보리밥
사는 게 조금 여유롭다고 느껴져서일까? 너도 나도 건강식을 찾는다. 산채 비빔밥, 곤드레 나물밥, 영양밥...
살기 어려웠던 시절엔 보리밥이 쌀밥보다 더 흔했다.
오죽하면 생일날 최고로 쳐 주던 음식이 <하얀 쌀밥에 고깃국>이었다. 윤기 짜르르 흐르는 햅쌀밥에 기름기 둥둥 떠 다니는 국물은 그야말로 <윤택한 삶>의 표본이었다.
밥 한 술 떠서 입안에 넣으면 보리 따로, 쌀 따로 굴러다니는
느낌이 싫었기에 보리밥 하면 <어쩔 수없이 먹어야 하는 밥>
쯤으로 여겨졌었다. 중고교시절 도시락에도 어김없이 보리밥이 주류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모두 다 보리밥은 아니긴 했나 보다. 그 당시 표어를 보면 <혼 분식 장려운동>이 기억에 남는 걸 보니 말이다. 나같이 없는 집 애들이야 그런 운동쯤이야 사치에 불과했지만 있는 집 애들은 <쌀밥에 장조림>은 흔했고 혼식운동 동참여부를 검사하는 시간을 위해 나 같은 보리밥도시락의 밥을 꾸어다
자기들 도시락을 꾸미는 게 일일 때도 있었으니까...
온통 쌀 밥인 도시락의 중간중간, 보리밥을 듬성듬성 심어서 선생님의 검사망을 벗어나는 일이 다반사였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살기가 좋아져 그런 건지 이젠 건강을 이유로 꺼끌꺼끌한 현미밥이나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다소 싫은 식감까지 무시할 수 있는 보리밥이 좋아졌다. 물론 헐 값도 아니고 쌀밥보다 더욱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찾고 또 찾아다니며 먹어댄다. 사실 밥 맛으로 따지면 기름기 좔좔 흐르는 햅쌀밥이 더 좋다. 올만에 친구들하고 만나 보리밥을 비벼 먹으며 떠 오르는 쌀 밥을 꿀꺽 삼킨 채 옛날로 돌아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