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거시기 (29)

야설/박지웅

by 최병석

폭설이 술집을 덮치고 있다 창가에 등 굽히고

야설 을 읽던 사내 깜빡 잠든다

비틀거리는 사내를 야설이 조용히 따라나선다

사내는 이런 밤에 피해야 할 조언을 떠올린다

눈 속 을 오래 걷지 마라 미궁에 빠진다

길에 몸을 잘못 밀어 넣었다가는 결국 백발이 된 희망과 맞닥뜨리게 된다는 것

그러나 사내는 움직이는 흰 벽 속으로 계속 걸어 들어간다 어차피 아는 길은 없다, 세상은 단 한 번도 같은 길을

내준 적이 없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빠져나가는 세상 무너지고 쌓이는 무수한 사방을 보았다,

그 어디에 의자를 놓고 정착할 수 있단 말인가

독백에 빠진 사내를 마중하는 것은 언제나 미노타 우로스의 입, 그 앞에 뼈다귀처럼 널린 봄날을 어떻게 추스리겠는가

사내는 몇 번 눈 위에 이름을 쓴 일이 있다

하늘은 몇 번 그 이름을 덮어 지운 적이 있다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다면 그것은 애초부터 삶이아니었으리라 알면서도 속고 또다시 눈 뜨고 꿈꾸는 것이 삶이라면

삶은 정말 나쁜 버릇이다

창가에 축 늘어진 사내를 어디론가 밀어붙이는 눈발들.

하늘은 오늘 하늘을 한 점도 남길 생각이 없다


-시집<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박 지웅/북인출판


♡시를 들여다 보다가


제목이 야설이라고 해 놨기에 내용도 야한 썰정도로 생각했다.

들여다보니 夜雪이다.나이 육십에 야한 것을 떠 올리다니...

더위가 몰려올 싯점에 눈이야기라니...

그러나 한번쯤 땀흘리는 더위를 끌어 안은 채 앞이 안보이는 눈길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때가 있었기에 피서 차원에서 시를 음미해본다.시원하다.또는 답답하다.눈발을 맞으면서도 시인은 새하얗게 펼쳐지는 모르는 길을 떠올린다.세상은 단 한번도 같은길을 내준적이 없는 무심함에 삶이란 나쁜 버릇이라고 꼬집는다.내 의지가 아닌 삶의 시작점부터 희망이라는 봄날을 알면서도 속고 또 다시 눈뜨고 꿈꾸다 사라질 허상이라 깨우쳐 주는 쏟아지는 밤의 눈발들이여.

오늘의 나는 창가에 축 늘어진 사내가 되어 하루종일의 하늘을 지워버리고 마는 하늘을 향해 무어라 외칠 수 있을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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