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폰여행
경만 씨는 오랜만에 백화점에 갔다. 무미건조한 일상을 거듭하다 보니 어느새 한해를 마감해야 하는 끝자락이다. 해마다 연초가 되면 마음을 굳게 잡고 무언가를 해 낼 것처럼 입술을 깨물어 보지만 어김없이 연말이 되면 후회와 아쉬움이 미련이라는 탈을 쓰고 주인공처럼 등장을 한다. 그 주인공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등장하는 꼴이 보기 싫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시끌 복잡한 백화점에 온 거다. 휘황한 장식과 현실사람을 능가하는 패션피플들이 마네킹처럼 그 폼을 자랑하며 곳곳에 즐비하다. 구경만 씨는 오늘따라 적극적인 쇼핑객을 덧입었다. 평소에 갖고 싶었던 것들과 입고 싶었던 옷들을 마음껏 손에 넣었다가 내려놓고 피팅룸에 가서는 가격표에 상관없이 온갖 폼을 다 잡아가며 입는 것에 열심을 내었다. 그러다가 전신거울한테 속상한 말도 듣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한 해 동안 미뤄두었던 나머지 일들을 채우고 있다는 생각에 불현듯 뿌듯해지기도 하였다.
"이여 경만! 니 여기서 뭐하는겨?"
"아이고 이게 누구여?"
대학 때 단짝으로 지냈던 경중이가 어깨를 툭치며 다가왔다. 이 놈 하고는 이름도 거의 같고 성격도 잘 맞아 대학 4년 내내 함께 붙어 다녔었다. 졸업하며 군대 가느라 서로에 대해 소홀했었기에 지금은 뭘 하고 있는지조차 몰랐었다. 그런 그를 화려한 백화점에서 그것도 제법 값이 나가는 브랜드의 의류코너에서 만났다. 그도 이 브랜드를 좋아한단다.
"올만에 만났는데 우리 같이 밥 먹으러 가자"
"거 좋지! 근데 뭘 먹을까?"
백화점 지하의 푸드코트로 내려갔다. 연말이면 백화점 내의 모든 곳, 모든 코너에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혹시 경만 씨가 생각하고 있는 바로 그 이유 때문인 것일까?온통바글바글이다. 오랜 시간 헤매다가 겨우 앉을 수 있는 자리를 확보하고 숟가락을 들었다.
"니는 여전히 일관성이 있네!"
"어이구 남 말하네!"
반가운 마음이 여태 떨어져 함께하지 못했던 세월을 힘 있게 끌어당기더니 바로 근처까지 데려다 놓았다. 그러더니 바로
서로를 껄껄거리게 만든다.
"아, 참 너 혹시 연초에 시간 좀 되니?"
"왜? 별 계획은 없어"
자기한테 조식포함 호텔쿠폰이 있는데 선약이 있어서 그냥 날아갈 처지라 시간이 되면 주겠다고 한다.
"그럼 날 줘! 올만에 호캉스 함 가보자"
"그래, 이 쿠폰 하나로 조식은 물론이고 호텔카페에서 케이크까지 먹을 수 있거든"
연말에 백화점에 들른 건 최고의 선택이었다. 한해의 뒷문을
야무지게 잠글 수가 있었다는 생각에 단짝친구도 만났고 덤으로 새해벽두부터 공짜 호캉스를 즐기게 되었다.
새해가 되었다. 송구영신예배로 지난해를 돌아보며 감사를 드렸다. 새해로 진입하며 허락된 희망에 벅찬 기운을 느끼고는 공짜여행지로 고고씽! 새로운 해가 떠올랐다.
널따란 통창안에서 시원한 소리를 내지르는 바다가 경만 씨를 반겨준다. 새해를 다짐하는 경만 씨가 비명을 지른다.
"그래, 바로 이거지!"
훌륭한 조식을 마무리하고 내친김에 카페로 가서 케이크를 골랐다.
"요기 요걸로 주세요"
"손님! 이 쿠폰은 사용불가입니다"
"네? 그럴 리가요?"
맙소사! 조식포함 호텔쿠폰은 유효기간이 아직 남았지만
케이크의 이벤트기간은 31일을 끝으로 지나버렸단다.
'그래, 그래도 이게 어디냐? 이것조차 감사하다고'
새해벽두부터 비싼 호텔케이크로 시작이다. 파이팅!
구경만 씨가 이 좋은 호캉스를 그저 구경만 하다 갈까 봐 귀한 결제의 기회를 허락했구먼, 친구야 고맙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