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콩트 2(36)

요즘의 정세

by 최병석

차라리 씨는 새해벽두부터 눈코 뜰 새가 없다. 예년과 달리 분주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오늘과 내일을 구분 짓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다. 오늘이라고 정확히 구분을 짓고 하룻밤 자고 나면 내일이 달라져 있는 예측불허의 시간들이 새록새록 나타나는 요즘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의 세계라는 게 주요 인물 3인방에 의해 요동치고 있는 중이라 더욱 그렇다.

가늠해 보면 유럽은 모두 푸틴이라는 자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중이고 아시아나 아프리카는 시진핑이다. 여기에 아메리카지역은 모두 트럼프가 장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엔 한술 더 떠서 트럼프가 미친 관세의 칼에 덧붙여 막강한 군사력으로 덴마크령인 그린란드까지 넘보고 있다. 그러자니 라리씨도 환장할 노릇이다. 기껏 수립해 놓은 사업계획이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그의 회사는 무역회사이다 보니 국제정세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우*러전쟁과 가자지구의 혼돈 때문에 우왕좌왕하는데 이란사태와 그린란드사태가 기름을 붓는 격이 되어 버렸다.


차라리 씨가 어제 하루 종일 수정과 보완을 거듭해서 결재판에서 잉크도 마르기 전인데 아침에 눈을 떠보니 밤새

트럼프대통령이 기존의 관세를 대폭 인상하겠다고 썰을 풀었다. 망했다. 오늘도 하루 종일 보고서에 매달려야 한다.

되돌아온 결재판을 한숨을 내쉬며 바라보고 있자니 결재권자인 김 부장이 다가와 어깨를 지그시 두드린다.


"차 과장! 오늘 점심 내가 쏠 테니 맞아줄겨?"


"아고 부장님, 이거 아주 죽겠습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아주 잠깐 짬을 낸다고 나갔다가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보니 오후시간을 몽땅 잡아먹었다.


"차 과장! 큰일인데... 내가 오히려 도와준 게 아니라 방해만 했군 그래, 이걸 어쩌누?"


일은 벌어졌고 시간은 쫄아들었다. 그런데 어쩔 수가 없다. 도무지 일 할 마음이 생겨나질 않으니 이렇게라도 솟구치는 분을 해소하지 않고서야 견뎌낼 재간이 없다.


"부장님! 여튼 밤을 지새우고라도 임무완수 하겠습니다 "


이렇게 다짐을 해놓고 짐을 한 보따리 싸들고 집으로 향했다.

최근 며칠 동안 트럼프의 트자만 봐도 스트레스가 쌓일 판이지만 마음을 다잡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애당초 계획안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변동성을 모두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수용할 수 있는 게 맞는 이야기였다. 그런 면에서 보면 결국 일처리를 잘못한 게 차라리 씨 본인이 맞는다는 서글픈 현실에 현타가 씨게 와버렸다. 밤을 꼬박 새웠다. 이번에는 예측 가능한 변동성을 염두에 두고 예상계획안을 하나에서부터 복수의 경우를 가정해서 수립해 나갔다. 짐을 싸들고 집으로 돌아온 지 한참이 지났는지 밖을 보니 온통 어둡다. 깜짝 놀라 시계를 보니 오전 6시다. 이제 조금 있으면 찬란한 햇빛을 맞이해야 할 시간이다. 책상에 엎드려 한숨을 길게 내쉬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여보! 오늘은 재택이에요?"


아내의 물음표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출근해야 할 시간이다.


"아이고.. 늦었다!"


차를 몰고갈 엄두는 안 나고 다행히 집 앞에서 버스를 타면 출근시간 전까지 맞출 수 있겠다. 서둘러 짐 한 보따리를 백팩에 처넣고는 저 멀리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버스로 향했다. 근래 보기 드문 속도감으로 내 달렸다.


"세~이~프!"


올라 선 버스 안에 다행히 자리가 있다.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지 5분도 채 안되었는데 차라리 씨는 잠이 들었다. 무리해서 달려온 한밤의 일 량에 버스를 향해 돌진했던 빠른 속도감이 차라리 씨보다 먼저 자리에 앉은 채 몰려오는 잠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손님! 손님! 여기는 종점인데요"


버스기사가 흔들어대는 통에 잠에서 깨어난 차라리 씨가 뒤로 넘어졌다.


"앗! 여기가 어디죠?"


그랬다. 차라리 씨가 집문을 나서면서 포착한 버스의 번호는 회사로 향하는 550번이 아니고 옆길로 새는 530번이었다.

550번과 530번이 묘하게 닮아 멀리서 보면 서로 헷갈리게 보였던 것이다. 차라리 씨는 결국 생뚱맞은 곳까지 와서야 눈을 떴고 눈을 뜨고 나서야 아침 출근길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에 주저앉고야 말았다.


차라리 씨는 차라리 조금 피곤했어도 차를 몰고 출근길에 오르는 것이 나을 뻔했었다.


'정말 요즘의 정세는 앞을 가늠할 수가 없구나! 끌끌 끌'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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