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콩트 (5)

검은 승합차

by 최병석

기해씨는 이제 막 40대에 접어든 가정주부이다. 다시 말하면 워킹맘에서 벗어나 오로지 아이들과 남편 그리고 집안일을 위해 노심초사 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해씨는 오늘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느라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물론 그 이전에 남편의 출근을 위해 와이셔츠를 다리랴 간단 조식을 챙기랴 첫 번째 전쟁을 치르고 난 이후였다. 워킹맘으로 출근을 준비했을 때만 해도 남편이나 아이들의 협조(?)가 유기적으로 이루어져 바삐 움직여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전담주부가 되고 나니 모든 일의 전반부에 그야말로 전담을 하게 되니 매일 아침 진이 빠지게 된다. 오늘도 전쟁의 후유증을 달래고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리클라이너에 앉아 커피 향을 들이켜고 있는 중이다. 거실통창을 통해 5월의 연둣빛이 집안으로 들어오는데 피 튀기는 전쟁터가 순간 녹아내린다. 여기에 FM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DJ의 목소리까지 더해지면 그나마 쉼이 찾아와 준 것 같아 여유롭다.


그 여유로움이 기해씨의 감았던 눈 속에 들어 있다가 후다닥 눈 밖으로 튀어나왔다. 거실 밖에서 보이는 다소 위험한 광경을 보게 된 것이었다. 중딩 남학생 대여섯 명이 자전거를 타고 우르르 모여들더니 미리 와있던 여학생 네 명과 만났다. 그곳에서 무언가 깔깔거리며 대화를 나누며 장난을 치던 무리들이 대뜸 산속으로 향했다. 그 산속에는 폐가가 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저렇게 몰려가는 데는 몬가 나쁜 의도가 숨어 있을 확률이 높다.

기해씨는 학부모다. 아이들이 이런 상황에 처해 위험한 일에 노출되고 피해자나 가해자로 나눠지는 경우를 수도 없이 듣고 또 보았다. 그녀는 예의주시했다. 한참 후에 함께 올라갔던 여학생 넷 중 두 명만 아래로 내려왔다. 나머지 무리들은 아직 그곳에 있을 텐데...


'이건 그냥 신고감인데 신고를 해야 할까? 아님 이거 큰 오지랖일까?'망설이고 있는데 가슴이 콩닥거린다. 아무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얼마 전 영화에서 보았던 빵셔틀과 왕따를 당하며 집단린치에 무너지는

피해 학생들의 절규하는 모습들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소수의 여학생 둘을 꼼짝 못 하게 끈으로 묶어놓은 채 다수의 남학생들이 횡포를 부리는 사악한 행태가 영화보다 리얼하게 다가온다. 그녀가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112죠? 여기여..."

"아, 네 전화 거신 분의 존함과 연락처를 좀..."


전화를 걸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학생들이 무리 지어 올라간 폐가 쪽으로 향한다.


"앗! 잠깐 저 저건?"


전화를 끊은 지 1분도 안되었는데 갑자기 검은색 승합차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양 옆의 문이 열리더니 후다닥 건장한 남자 두 명이 산속으로 향한다.


'어라? 나 말고도 지켜보던 또 다른 사람이 있었나? 이렇게 빨리 출동을 할 리가 없는데...'


기해씨가 갸웃거리는 고개를 추스르다가 그만 못 볼 것을 보고야 말았다. 검은색 승합차에서 내려 숨 가쁘게 산속으로 올라갔던 그 건장한 남자들의 주목적은 그저 <노상방뇨>였다.


기해씨는 더러워진 눈을 씻어버리고 싶었다.


'아니 이건 아니잖아요!'


잠시 후에 순찰차가 도착했다. 다행이었다. 숲 속으로 향했던

무리들은 경찰에 의해 아래로 흩어져 내려왔고 우려했던 영화 같은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성이 신가요 이름이 기해씨 <신기해>씨는 영화 속에서나 볼법한 일들을 지켜보다가 건장한 남자들이 행한 <가위가 그려진 곳에서나 볼 수 있었던 > 일을 목도하고야 말았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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