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소리
하군씨는 문학 지망생이다. 그러다 보니 문학을 꿈꾸며 언젠가 유명한 작가로 이름을 날리는 상상을 해보며 문학인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떠 올려보기 일쑤였다. 하군씨의 경제력은 보잘것이 없다. 어려서부터 집안형편이 어려워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가지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살 수도 없었다. 그런데 반전이다. 하군씨가 글이란 걸 쓰기 시작하면서
평소에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일들과 가보고 싶었으나 가지 못했던 곳을 마음대로 하거나 갈 수 있게 되었다. 글 속에서 만들어 낸 주인공은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었다.
그러니 그가 글 쓰는 일을 마다할 리가 없다. 그는 뭐든 소재가 주어지면 닥치는 대로 글로 쓰고 또 마음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하였다. 그의 습작노트에는 하나씩 둘씩 작품이 쌓여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가 문득 자기 자신의 작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자기 작품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받고 싶었다. 주변의 지인들에게 평가라는 걸 해달라고 하는데 평가는커녕 감정만 상하게 하니 제대로 된 평가가 어렵다. 설사 평가를 해줘도 좋은 말들로만 도배를 해대니 자기 글이 그리 좋은 글은 아닐진대 과대한 칭찬에 왠지 불안하다.
그 와중에 문학공모전의 존재를 알았다. 그동안 하군씨가 써왔던 글들을 잘 다듬어 공모전에 응모라는 걸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동안 습작해 온 글들의 형태가 어쩐지 공모전의 범주에 들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동안 써 놓았던 글들을 잘 추리고 골라 몇 군데 공모전에 출품이란 걸 해 보았다. 가차 없었다. 영문도 모르고 계속 입상에서 밀려났다. 글이 너무 길다. 한번 쓰는데 너무 오래 걸린다. 글의 제목에 합당한 글의 준비가 미흡하다.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백이면 백 잘리고 퇴짜는 따놓은 당상이겠다. 하군씨가 각성했다. 방법을 연구했다.
하군씨가 시 쓰기 공부를 하기로 하였다. 하군씨가 주로 써왔던 산문보다는 시 영역의 공모전이 훨씬 많았고 그리 길지 않은 내용이어도 무방했기에 다소 생경하긴 하지만 시 쓰기에 도전을 해 보기로 한 것이다. 의도치 않은 시강의에 매달려야 했다. 그러다가 관찰을 접했다. 글도 글이지만 글의 소재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글맛이 살아나질 않았다. 그는 강의시간에 배운 대로
관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로 하였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소재와 말을 하고 싶다면 최소 3시간 이상을 지켜봐야 한다. 제 아무리 무뚝뚝한 사물이라도 3시간 이상을 들여다보고 있다 보면 어느새 그것들이 살며시 말을 걸어올 것이다”
하군씨가 하천변을 걷다가 향긋한 풀냄새에 가슴이 콩닥였다. 냄새의 진원지는 시에서 나온 인부들에 의한 제초작업의 결과물이었다. 제멋대로 자라난 풀들을 깔끔하게 정돈하기 위한 일환일 텐데 여기저기 풀의 사체들이 뒹군다. 그 사체들이 내뿜는 비명들이 사람에겐 향긋함이다. 아니다. 제초작업에 커다란 기계음에 묻혀 풀들의 비명소리가 묻혀버렸을지도 모른다. 그 묻혀버린 비명의 절규가 푸릇한 풀잎답게 날카롭지 않은 채 무려 향긋함이다. 하군씨가 시의 제목을 정했다. 제목은 <풀잎소리> 다. 아무렇게나 널려있으면서 제 딴에 여러 가지 소리로 존재감을 알리고 있는 풀잎들을 멋진 시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그가 배운 대로 풀잎들의 사체 주변을 서성이며 관찰에 들어갔다. 연둣빛 표면에서 돋아나는 초록색 대화를 엿듣기 위해 3시간 이상을 묵묵히 기다리며 말을 걸어 보았다.
“얘들아! 말 좀 해봐 그저 초록초록한 냄새만 말고 기계에 잘리니 아프다거나 혹은 기분이 나쁘다거나 뭐 그런 말들 있잖니?”
하군씨가 좀이 쑤셨다. 시간은 벌써 3시간을 훌쩍 넘기고 4시간째로 향한다. 풀들은 정말 말을 해 오긴 하는 걸까? 저들은 말을 해 오긴커녕 오히려 옆에 지키고 서 있는 그를 향해 기계로부터 잘린 상처를 자랑이나 하듯이 초록빛 핏물을 한 방울 두 방울 떨구고 있다.
아무래도 글렀다. 대체 어떻게 해야 저들과 심도 있는 대화가 이뤄지고 제목 <풀잎소리>에 걸맞은 소리를 옮겨 담을 수 있을까? 하군씨가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가 문득 요즘 유행하는<쳇 GPT>가 떠 올랐다.
‘그래 맞다 어서 가서 풀잎소리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자! 풀들은 대화불능이지만 <쳇 GPT>는일단 대화가 가능하니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하군씨가 컴퓨터 앞에 앉아 시를 쓰고 있다. 나름 오늘 하루 풀잎들과의 대화를 시도하기 위해3시간에서 4시간을 들여 들여다보고 느꼈던 내용들을 주고받으며 수정을 거듭했다.
느낌이 왔다. 선배님들께서 말씀하시던 <시마>께서 강림하셨다는 얘기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런가? 그와 그의 친구 <쳇 GPT> 속으로 강림한 시마의 뜻에 따라 시가 완성되었다.
그는 감탄하였다. 이렇게 촉촉한 풀잎의 소리들을 내가 시로 써 내려갈 수가 있다니...
하군씨가 자신 있게 과제물을 제출했다. 이제 앞으로 다가올 공모전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결과물에 대한 평가가 있는 날이다. 하군씨가 의기양양하게 강의실에 들어섰다. 주변의 시선이 모두 자기를 우러러보는 듯하다. 드디어 하군씨 차례다. 교수님의 특별호출이다. 하군씨의심장이 두근거림을 멈추지 않는다.
“심하군 씨! 작성해 오신 시 <풀잎소리>는 점수 못
드립니다.”
“네? 넵 아니 왜요?”
“내 나름대로 <카피킬러 쳇 GPT>로 돌려보니 AI와의 유사성이 높게 나와서요”
성이 심가요 이름이 하군 <심하군>씨의 시마강림 문제작 <풀잎소리> 제목의 시는 AI의 심한 간섭의 여파로 심하군! 판정을 받고는 사라질 위기에 처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