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콩트(9)

자금조달법

by 최병석

과자씨는 요즘 당근 먹는 재미에 빠졌다. 시도 때도 없이 당근과 관련된 색깔과 모양과 검색어라도 나올라치면 환장이 모든 생각을 지배하려 든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길가에 널려있는 당근을 조용히 잘근잘근 씹어 먹기만 하면 비어있는 주머니에 쏠쏠한 인물들이 들어앉아 주기 때문이다. 일테면 퇴계 이황선생 혹은 이율곡 선생, 어쩔 땐 세종대왕께서 신사임당의 손을 잡은 채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존재를 알려주곤 하였다. 그 소리! 그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역사를 배우는 수업시간의 새로움을 간단히 뛰어넘고는 아주 흥미로운 도파민으로 찾아들기 일쑤였다. 그러니 당연히 당근 찾기에 소홀할 수가 없었다.


과자씨는 오늘도 일찌감치 동네 아파트 투어에 나섰다. 그가 투어에 나서며 제일 먼저 들르는 장소는 다름 아닌 편의점이다. 아파트주민이 아니면서도 단지 안을 휘저을 수 있는 비결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되겠다. 굿모닝 인사와 함께 웃고 있는 진열대의 박카스를 바코드 스캐너로 옮기면 삑 소리로 화답하며 오늘의 시작을 알린다.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 괜찮네요! 이거 하나 드세요"

"밤새 뭐 괜찮은 것 나왔을까요?"

"글쎄다... 방금 교대해서 확인을 못해 봤는데 한번 둘러봐요"

"네 아저씨 한번 둘러볼께요"

과자씨는 이제 요령이 붙었다. 얼핏 대충 쑥 지나쳐도 저 물건이면 이황선생님 다섯 분쯤, 요런 물건이면 세종대왕 두 분이나 세분정도, 아 요건 신사임당께서 도도한 발걸음도

마다하지 않으실 그런 물건이로세! 그랬다. 과자씨는 대학입시의 쓴 맛을 두 번이나 맛보고 삼수의 길을 걸으면서 틈틈이 자금조달의 방법으로 당근을 이용하고 있는 중이다.

처음엔 집에 있는 물건 중 사용빈도수가 작은 것들을 내놓았었다. 어느 날 집 근처의 아파트단지를 지나는 길에 보니 제법 쓸만한 것들이 버려져 있어 집으로 가져다가 작동상태를 확인하고 깨끗이 소제한 후 내놓았는데 바로 구매자가 나타나 거래가 성사되었다. 과자씨의 당근온도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거래품목도 다양해졌다. 재수 좋은 날에는 간혹 명품 브랜드도 건질 수도 있었다.

오늘은 날도 꾸물꾸물하고 아파트단지 몇 군데를 돌았는데도 별 소득이 없다. 이러다 비라도 내려 쫄딱 젖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한 군데만 더 돌아보기로 하던 차였다. 그의 눈에 포착된 멀쩡한 전기밥통 하나. 정말 그럴듯했다. 외관에서 풍겨 나오는 아우라가 정말 일품이었다.

"아싸! 심 봤구나!"

곧 쏟아질 듯 분위기를 먼저 내려보내주던 하늘이 소나기를 준비하다가 물에 젖을 밥통을 과자씨를 통해 건져내게 하셨다는 깊은 의미를 부여하며 감사함을 내뱉는다. 하늘은

그 인사를 받아들였는지 거뭇함을 더해가고 있다.

"아코 여기서 더 머뭇거리다가는 밥통도 나도 비에 다 젖겠네"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 그였다. 더 이상 손볼 것도 없었지만 정성껏 닦아내고 손봤다. 좀 더 고급스러운 사진 각도를 구현하며 대문을 장식할 메인사진을 준비했다. 판매를 위해

시중판매가격을 물색하던 그가 깜짝 놀랐다. 시중판매가가 100만 원을 훌쩍 넘는다. 놀라운 흥분이 심장을 벗어나 손끝에 머물며 팔딱거림을 시전하고 있다.

'와아~이거 얼마 받아야 되는가?'

'어차피 새로 산 것도 아니니 양심껏 30프로만 챙기자'

고급스러움을 살짝 덧칠한 메인사진을 올리고 멘트까지 마무리하고는 구매자를 기다리기로 했다.

확실히 물건이 좋은가보다. 게시한 지 하루밖에 안 되었는데 구매자가 나타났다. 일사천리로 약속이 이루어졌다. 과자씨는 쾌재를 불렀다.

'역시 좋은 물건을 잡는 것이 최고야!'

흐뭇해하는 그의 얼굴에 뿌듯함이 표정의 절반 이상이다.


약속장소인 전철역 2번 출구로 나갔다. 찜통더위를 잠시라도 피하기 위해 그늘이 있는 의자에 앉아 구매자를 기다리고 있는데 건장한 청년 두 명이 과자씨 앞에서 서성인다.

"저 혹시 당근이세요?"

"네? 아 혹시 전기밥통?"

불현듯 청년 중 하나가 과자씨 뒤로 돌더니 수갑을 채운다.

미란다 고지를 읊어대며 한마디 한다.

"귀하를 ㅇㅇ전기밥통 장물거래 위반 혐의로 체포합니다"


알고 보니 과자씨가 주워 온 고가의 전기밥통은 버린 게 아니었다. 이삿짐을 옮기는 과정에서 마지막 짐으로 남겨진 상태였고 이삿짐업체 직원이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성이 전가요 이름이 과자씨 <전과자>씨의 자금조달방식에 다소 문제가 생겼다. 이를 어쩔?

토요일 연재
이전 08화고야의 콩트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