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콩트 (10)

발 달린 핸드폰

by 최병석

정해 씨는 근 20년 만에 동창회와 연락이 닿았다. 학창 시절을 줄곧 서울에서 다니다가 신랑을 만나 지방으로 옮겨간 이후 20년 만에 다시 서울 입성이다. 끊겼던 동창회 모임도 이제 다시 참석할 수가 있게 되었다. 남편이 지방사무소의 소장이었다가 다시 서울의 본사로 컴백하니 정해 씨의 거처도 당연히 서울로 정해진 것이다. 사실 정해 씨가 결혼식을 올리고 난 후에 지방발령으로 내려갈 때만 해도 이렇게 장기간 눌러앉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한 해 두 해 연거푸 지나가는 세월의 속도는 왜 이리 빠른지 벌써 스무 해가 지나버린 것이다. 지방물을 먹다가 서울물을 먹게 되니 제일 먼저 친하게 지냈던 친구 경해가 떠올랐다.


"야, 경해야! 나야 정해 잘 지내지?"


사실 지방에 있을 때도 늘상 전화로 안부이상의 수다가 이어져 오고 있기는 했었다. 카톡이다, 별그램이다, 페북이다 여러 모양으로 서로에 대한 관심이 없진 않았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볼 수 있고 만날 수도 있고 얼굴 보며 이야기할 수도 있다.


"어 경해야! 나 정해야"

"우리 만나야지 요번 주 토욜 어때?"


정해 씨는 베스트 드라이버다. 면허증을 취득한 지 10년도 넘었다. 웬만한 곳은 애마를 끌고 종횡무진 누빌 각오도 되어있다. 하지만 그건 지방에 있을 바로 그때뿐이었다. 서울에 입성하 고나니 언감생심 꿈같은 얘기다. 무턱대고 차에 생명력을 허락하고 살려둘 일이 아니었다. 여차하면 이곳저곳에서 으르렁대며 할퀼 태세다. 일찌감치 운전대를 놨다. 당분간 대중교통이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약속장소도 ㅇㅇ역 3번 출구가 최고다. 모처럼 지도앱을 켜고 버스와 전철의 걸음폭을 지켜보며 운신의 폭을 가늠한다. 지방에 있다가 모처럼 서울에 상경했을 때가 있었지만 그때와는 또 다르다. 모처럼의 행차에는 깍듯한 에스코트가 따라왔지만 이제는 서울 안에 포함되었으니 이제는 스스로 알아서 처신해야만 한다.


어렵사리 전철에 올랐다. 오랜만에 타는 전철이라 사실은 낯도 설고 자리에 앉아갈 수나 있는지 걱정도 되었다. 주말이 아닌 평일의 오후시간대는 그런대로 빡빡하지는 않았다. 동그랗게 말려있는 흔들림 방지 친구들을 부여잡은 채 앉아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스캔해 본다. 그리고는 무언가 곧바로 내릴 가능성이 진하게 묻어 나오는 청년의 앞에 자리를 잡는다. 오늘의 베팅포인트는 청년의 시선이 어느 곳에 가 있느냐였다. 그의 시선이 수시로 차벽에 붙어있는 노선도를 향했다. 그의 귀는 다음 내릴 곳의 안내방송에 집중해 있었으므로 십중팔구는 수 분 안에 그녀의 앉을자리가 확보될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그녀의 자리는 하필 임산부보호석 바로 옆자리였다. 핑크빛 좌석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자리를 유지하다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녀의 신발끈이 풀려있다. 마침 핑크빛 좌석은 비어있다. 핑크색 위에 핸드폰을 내려놓고 신발끈을 조여 맨다. 신경 써서 조여 맨 운동화가 예쁘다. 고개를 들고 핸드폰을 챙기려 했다. 아뿔싸! 웬 아저씨가 그 핑크빛 좌석에 앉아있다.


"저기 죄송한데요 제 핸드폰을 깔고 앉으셨나 봐요"

"네? 그 핸드폰 아주머니 꺼였어요?"

"네? 그게 무슨 소리?"


이 아저씨가 자리에 앉으려는 찰나, 핸드폰이 놓여 있어서 주인이 누구인지 둘러보는데 열려진 출입문을 막 나가고 있는 임산부를 발견하고는 냅다 쥐어드렸다는 얘기였다.


"네에? 그거 제 꺼였는데..."


그녀의 핸드폰이 전역에서 이미 내려버리고 난 후였다.


성이 진가요 이름이 정해 씨 <진정해>씨는 오늘 약속시간을 못 지킬 것 같다.

"경해야! 쫌 늦을 것 같아, 기다려줘"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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