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콩트 (11)

애정행각

by 최병석

아라 씨는 요즘 엄청스레 바쁘다. 그녀의 나이 스물

여섯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막 취준생의 영역을 넘어섰다. 취업을 준비한다는 것은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항거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어딘가 모르게 흐르고 있는 나이한테 지고 있는 그런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하지 말라는 주변의 권고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고 아라 씨는 어느덧 취준생의 길을 자연스럽게 걷고 있는 셈이 되었다. 그녀가 고교시절부터 쫓아다니던 애정걸이 있었다. 이른바 <오덕후>인 채로 애정함에 온 정신을 담아 그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아다니고 함께 했었다. 그 애정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아이돌 걸그룹이었다. 고교시절부터 자칫하면 대학입학도 위태로운 그 시기부터 그녀들의 입는 것, 먹는 것, 행하는 모든 것들을 닮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러다가 대학엘 들어갔고 남들은 캠퍼스커플이니 단체미팅이니 몰려다니고 있을 그때에도 아라 씨의 주 관심사는 오직 <애정걸>들 뿐이었다. 그 <애정걸>들에 대한 관심이 <취준생>을 겪어 내며 잠시 소원했었다. 지금 그런 덕질을 일삼을 때가

아니었었다. 어떡해서든 쏜살같은 나이의 속도에 뒤처져서는 안 될 일이었었다.


이제는 취업에 성공도 하였고 일하느라 바쁘기도 하지만 관심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던, 수면 아래 잠겨서 올라올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애정걸>들이 마치 <두더지 잡기 게임>에서 자기를 때려 달라고 죽자 사자로 달려드는 형국으로 모습을 바꾸어 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애정걸>들의 활동상황이 아라 씨의 레이다망에 포착되고 있는 중이다. 이번 주에는 일산공연이 있고 담주에는 삼성동 코엑스공연이 있고...

가만, 다음다음 주에 성수동에서 자선바자회가 열리네! 줄줄이 꿰고 있는 그녀들의 일정들을 읊어 대다가 아라 씨의 코를 낚이게 된 것 바로 <자선바자회>였다.


"어머 그래 여기엔 꼭 참석해야만 해!"


다른 것도 아니고 애정하는 <애정걸>의 멤버들이 소장하고 있던 예쁜 옷들-그것도 명품브랜드-을 득템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눈앞에서 펼쳐질 예정이라는 것이다.


"야호! 이번 기회를 위해 내가 총알을 준비했다구~"

"내 이번에야말로 평소 눈여겨봐 두었던 저 드레스를 반드시

가져오고야 말테야"


아라 씨는 기어코 <애정걸>들의 <자선바자회>에 참석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며 눈앞에 펼쳐진 업무들을 하나씩 지워 나가고 있는 중이다. 사실 다다음주 토요일에는 중요한 업무 보고서를 내야 하는 날이다. 어영부영 머뭇거리다가는 자칫 보고서 때문에 <자선바자회>는커녕 애정하는 <애정걸>들의 얼굴마저도 못 보게 될 수도 있다. 잔뜩 긴장하고 계획된 보고서의 마무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왜냐면 그녀는 자기의 개인적인 사적 활동 때문에 업무를 그르칠 수는 없다는

확고한 결심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예정된

D-day전에 보고서를 완료했고 결국엔 <자선바자회>에 참여가 가능해졌다. 아라 씨는 크게 한번 심호흡을 한 연후에 자선바자회가 열리고 있는 장소에 들어설 수가 있었다.


"자 자 여기 애정걸들의 음반 1집 발표회 때 착용했던 리더A양의 팔찌 경매 들어갑니다. 자 시작은 만원부터입니다"


쏟아지는 경매품목들에 준비된 총알들을 이모저모로 들이밀어 보지만 하는 족족 물건들은 남의 손으로 넘어가기 일쑤였다.


이러면 안 되는 거였다. 오늘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순간을 뒤로 넘기며 인내해 왔더란 말인가? 다시 한번 노심초사했다.


드디어 마지막 경매다. 경매품목은 최근앨범 발표회 때 입었던 연보랏빛 미니 드레스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꼭 쟁취해야만 한다. 이를 악물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아라 씨의 소유한, 오늘 준비한 총알에 함께 간 친구의 총알까지 덧 씌우기를 통해서 득템에 성공하였다.


"야호! 심봤다 드뎌 내가 해냈다"


한껏 고무된 아라 씨의 얼굴엔 기쁨 가득이다. 평소에 애정하며 그렇게나 선망하며 소장각을 떨칠 수가 없었던 그 <애정걸>들의 드레스를 쟁취할 수 있다니... 감개무량이다.


보람찬 하루를 자정 넘은 시간에 정산하기로 하고 오늘의 선물과 경매에 성공한 연보랏빛 미니 드레스를 침대 위에 펼쳐 자화자찬 중이다.


"이야, 황홀도 하다!"


한 밤중에도 빛이 나는 고운 자태를 이제 입어 볼 차례다.

떨리는 손으로 감히 연보랏빛에 물을 들이며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중이다. 그런데 아뿔싸! 이 황홀한 명품 드레스가 그녀의 몸을 거부했다. 도저히 들어올 수가 없으니 갖고 있는 몸을 깎아 낸 후라야 입장할 수가 있다고 했다. 그녀의 멘탈이 나갔다. 그녀는 <애정걸>들의 환상적인 몸매에만 빠졌던 거였고 정작 자기 자신의 몸매를 돌아보는데 소홀했었다.


성이 조가요 이름이 아라 씨 <조아라>씨의 애정행각은 이렇게 좋아라 흥분만 하다가 막을 내리고야 말았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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