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친구
루리 씨는 아침부터 화가 난다. 아침 루틴을 집행하며 화장실에 앉아 신문기사를 읽다가 일본이라는 나라의 이중적 행태를 보니 다시 한번 부화가 끓어오르는 것이다. 저들 나라의 초등생교재로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명기한 방위백서를 추가했다고 한다.
"아니 이런 우라질레이숑이라니~"
루리 씨가 얼마 전에 읽었던 이순신장군의 일대기를 떠 올려본다. 일본인들은 정말 끝까지 치밀하다. 목적한 바를 우리처럼 허투루 내뱉지 않고 하나씩 둘씩 차례대로 준비해 나간 연후에 실행해 나간다. 그냥 화가 나서 얼굴만 붉히다가 쉽게 가라앉히지를 않는 일본인들인 것이다. 불현듯 작년의 기억이 떠 올랐다. 은퇴연한이 다 되어 이제 더 이상 일은 그만하고 집에서 쉬라는 국가의 어명에 몸 둘 바를 모르던 친구 세 명이 야심 찬 여행을 준비했었다. 서울 한복판의 카페에 둘러앉아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다가 누군가 독도엘 가보자고 했다. 그 얘기가 시발점이 되어 난생처음 독도로 향하게 되었었다. 그런데 사실 그 독도라는 곳은 아무나, 아무 때나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루리 씨와 그 일당들은 여행일정을 짜면서 일정 중 날씨도 고려했어야 했었다. 루리 씨는 시작부터 끝날까지 뱃멀미에 두통에 만신창이가 되었었다. 그러다가 정작 독도에는 입항은커녕 뱃멀미 와중에 흐릿한 눈을 하고 먼발치서 빙빙 둘러만 보다가 말았었다. 바로 독도의 코앞에서.
그랬었던 독도얘기를 이 아침에 접해보니 저 아래에서 잠자고 있던 의기가 탱천 한다.
"아놔 참 그 놈들, 내 이번에야말로 꼭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인하고야 말 테닷"
친구들을 다시 소집했다.
"여 잘들 있는겨? 왜 우리 지난번에 독도 가려다 구경만 하고 말았잖아? 그래, 그래서 말인데 다시 함 가 보자구~"
"특별히 이번엔 날씨도 쾌청한 날을 택하고 뱃멀미하고도 상관이 없는 <울릉도 크루즈>를 이용해 보잔 말이여"
경험은 또 다른 기회를 창출한다고 했든가? 암튼 지난날의 정신없었던 뱃멀미도 뒤로 하면서 비교적 괜찮은 숙소까지도 연계가 되어있는 <울릉도 크루즈> 상품을 예약했다. 일단 루리 씨와 그 일당들의 집은 서울이기 때문에 급하게 갈 이유는 없었고 하루 전 날 포항으로 내려가 하룻밤을 묵고 그 이튿날아침에 크루즈를 이용하면 될 일이었다. 이번에도 남자 셋이 뭉쳤다. 한 번의 실수는 병가지상사라고 했던가? 이번엔 달랐다. 여행에 관련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실수를 줄여나갔다. 숙소에서 버티며 지낼 품목들과 주변의 맛집들에 대한 정보들도 이중삼겹으로 준비해 놓았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우리 땅, 가장 동쪽 끝에 있지만 아름다운 기개로 무장한 땅 독도를 밟아보고야 말리라. 그 땅을 꼭 밟으며 이렇게 말하리라.
"독도는 누가 뭐래도 우리 땅"
발걸음도 가볍게 포항으로 향했다. 나이를 먹은 세 친구들은 자가용이 버겁다. 애마는 집에 모셔둔 채 서울역에서 만났다. KTX를 이용하면 2시간이면 족한 여정이 된다. 일찌감치 점심 무렵에 포항땅에 당도한 세 친구들은 저장해 둔 맛집을 찾아 점심식사를 해결하고 그 유명한 호미곶에 당도했다. 바닷바람이 코끝을 스치며 매운 닭발 냄새가 강한 휘발성 액체에 뒤섞인 채 미각을 건드렸다.
"여어~ 여기 호미곶 하면 매운 닭발 아녀? 우리 얼큰하게 쐬주한잔 어뗘?"
"거 아주 바람직한 생각이군! 다만 여기서 이렇게 찌끄리고 있다가는 오늘 저녁 숙소도 못 찾고 헤맬 수도 있으니 안주감을 포장해 가서 숙소에 가서 편안하게 먹는 게 어뗘?"
통일된 의견으로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매운 닭발과 야채들을 포장해서 예약된 숙소로 향했다. 물론 숙소는 내일 아침 출발 예정인 크루즈를 순식간에 잡아탈 수 있는 여객터미널 부근으로 잡았기에 이제 별 문제는 없다. 오늘 저녁만 별 탈 없이 잘 지내다가 기상시간 알람소리에 일어나서 크루즈에 오르기만 하면 계획된 <독도땅 밟기>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것이다.
세 친구는 거의 다 되었다는 안도감에 무척 고무되었다. 바닷바람의 끊임없는 유혹을 이겨내 숙소까지 무사히 도착을 하였고 아침에 눈만 뜨면 코 앞이 여객터미널이다. 포장해 온 간단한 안주감에 지역쐬주 두어 병만 까고 잠자리에 들기만 하면 되는 거다. 루리 씨가 <울릉도 크루즈> 작전의 최선봉에 서기로 했다. 쐬주잔을 기울이면서도 아침 기상시간에 정확히 울릴 수 있도록 알람의 입력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쐬주잔의 왕래 횟수로 밤은 깊어갔고 세 친구도 흐릿한 정신머리를 잠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날이 밝았다. 어찌 된 일인지 울려야 할 알람이 잠잠하다. 루리 씨가 눈을 떴다. 아뿔싸! 알람시간을 잘 못 맞춰놓았다.
별거 아닐 것 같았던 지역쐬주의 도수가 오전 시간을 오후로 돌려놔버린 것이었다.
"아그덜아! 늦었다. 언능 인나야 혀 알람이 잘못된 거 같아"
왠지 허전한 기분에 잠에서 깨어난 루리 씨가 시간 확인을 하고 부랴부랴 친구들을 깨우지만 술기운에 점령당한 나머지 두 친구는 대답대신 <음냐음냐>만 찌끄려대며 일어날 생각이 없다. 누리 씨의 활동반경이 거칠어졌다.
"야 이것들아, 지금 안 일어나면 독도는 또 물 건너 가는겨! 일어나란 말여"
황급한 루리 씨의 독촉에 반시체인 상태로 몸을 일으킨 두 친구를 이끌고 호출한 택시에 모든 짐들을 다 때려 넣고 출발!
"아저씨! 요 앞 여객터미널로 가 주세요"
그나마 다행이다. 숙소에서 터미널까지 5분각이다.
벌써 도착이다. 술냄새 펄펄 풍기는 짐짝들을 내려놓고 택시는 떠나고 세 친구는 터미널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이상하다.
크루즈승객들이 복작거려야 할 터미널이 너무 조용하고 썰렁하기까지 하다. 루리 씨가 크루즈 담당자에게 전화를 넣었다.
"김 과장님! 저희 지금 여객터미널에 와 있는데 벌써 출발하신 건가요? 주변이 썰렁하네요?"
"네? 여기가 아니라고요? 크로즈터미널이 따로 있다고요?"
"허걱쓰~"
망했다. 택시는 떠났고 예정된 시간은 지나서 크루즈는 출발했다. 지난 여행 때는 독도 바로 앞까지는 갔었는데 이번에는 울릉도 앞에도 못 가보고 여행을 끝내버렸다.
화가 나서 저쪽 아래 잠자고 있었던 의기를 끌어올려 살려 보려 했던 성이 이가요 이름이 루리 씨 <이루리>씨의 꿈은 이렇게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이루리 씨! 독도에 오르려던 꿈은 못 이루었지만 <독도는 여전히 우리 땅>이라는 사실은 다시 한번 외쳐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