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두 번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번엔 누군가의 공간, 누군가의 삶을 상상하는 과제였다.
과제 주제는 이랬다.
“공공 공간의 개선안 - 불편한 일상을 바꾸는 건축적 제안”
나는 잠시 멈췄다.
이건 ‘나’가 아닌 ‘우리’를 위한 설계였다.
다른 누군가의 하루를 바꾸는 고민으로 옮겨간 것이다.
공공 공간이라면 많았다.
도서관, 공원, 지하철 역사, 다 좋았다.
하지만 나는 자꾸 집 앞 버스 정류장이 떠올랐다.
늘 서 있는 자리가 좁고,
비가 오면 우산이 겹치고,
여름엔 그늘 하나 없던 그곳.
내가 자주 사용했던 곳이었기에, 불편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늘 말없이 서 있었다.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공간은 우리를 기다리게만 하고, 배려하지는 않는다는 걸.
그래서 그 정류장을 설계해보기로 했다.
거창한 터미널이 아니라,
그냥 동네 주민 몇 명이 편하게 쉴 수 있는
아주 작은 쉼터 같은 정류장을.
그 정류장을
나는 ‘머무름의 공간’으로 바꾸고 싶었다.
기다리는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공백이 아니라
작은 숨을 고를 수 있는
'회복의 시간'이 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세 가지를 기준으로 잡았다.
1. 그늘과 햇빛의 조화 - 계절별 햇빛 방향을 고려해 반투명 캐노피 설계
2. 작지만 따뜻한 좌석 - 벽에 기댈 수 있는 등받이 의자와, 혼자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적당한 간격
3. 작은 메시지 - 벽면에 새겨진 한 줄 “기다리는 당신의 시간도, 충분히 소중합니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를 위한 공간을 상상했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설계도를 그렸다.
예전엔 도면을 그릴 때는
선이 흔들리고 자신이 없었다.
“이게 맞는 건가?”
“내가 이렇게 그려도 되는 건가?”
의심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선 하나를 긋는 데에도 내가 담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더 확신 있게 펜을 움직일 수 있었다.
기능, 구조, 조도, 동선...
이 모든 것 위에 나는 작은 배려 하나를 올리고 싶었다.
그건 내가 한때 필요로 했던 것이기도 하니까.
공간이 누군가를 살린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니까.
과제를 제출하고 나니
이 도면이 나에게 하나의 ‘창’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의 나는 방 안에 갇혀 있던 사람이었다.
두려움 속에 커튼을 닫고
세상을 피해 있었던 사람.
하지만 지금 나는
누군가를 위한 정류장을 설계하며
작지만 단단하게 세상과 연결된 통로 하나를 만들었다.
그건 아주 작은 시작이었지만
“나는 건축가가 되고 있다”는 확신을 준 첫 설계였다.
그리고 지금
이제 나는 매일 그 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내가 만든 도면을 머릿속에 한 번씩 그려본다.
아직 현실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정말로 저곳에 내가 그린 구조물이 생기길 바란다.
누군가는 그 아래서 잠시 쉴 것이고,
누군가는 누군가를 기다릴 것이다.
그 모든 순간에,
내 마음이 스며들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