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도면을 완성했다!
거창한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중간 과제였다.
과제명은 “주거 공간 리디자인: 실존하는 공간에 기능을 더하거나 의미를 바꾸기.”
그 말은 곧
“아무 공간이나 좋으니,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상상해보라”는 뜻이었다.
곧장 떠오른 공간이 있었다.
바로, 내 방이었다.
자퇴 후, 집에서 몇 달을 지냈던 그 방.
그 시간 동안 방 안에서 몇 번이고 무너졌고, 몇 번이고 숨었고, 다시 일어났던 그 장소.
그 방을 다시 설계해보기로 했다.
처음 도면을 그릴 땐 낯설고 조심스러웠다.
그 방에는 너무 많은 감정이 얽혀 있었으니까.
책상 앞에 앉아 있었지만
그 공간 안에 앉아 있던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날들,
가족들의 발소리를 피하려 이어폰을 끼고 잠들던 밤들.
그 기억을 다시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번엔 도망치지 않았다.
나는 그 방의 ‘빛’을 바꾸기로 했다.
예전엔 커튼을 닫고 살았던 공간.
햇빛이 너무 싫었고, 창문도 거의 열지 않았던 방.
과제의 첫 줄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 방은 한때 나를 보호했지만, 동시에 가두기도 했다.
이제는 나를 살리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창문은 열리는 구조로 바꾸고,
침대 위치를 창가로 옮겼다.
책상은 한기를 피할 수 있게 벽에서 떼어내 배치했고
벽면에는 ‘공간을 보는 언어’를 붙였다.
(“이곳에서 나를 설계한다”,
“빛이 들어오는 각도에 따라 감정도 바뀐다.”)
딱히 누가 볼 것도 아닌 도면이었다.
하지만 그 위에 담긴 건 내가 처음으로 ‘다시 제대로 살고 싶다’고 생각한 마음이었다.
완성한 도면을 제출하고, 피드백을 기다리는 시간은 이상하게 떨렸다.
사실 점수를 잘 받고 싶다기보다는
누군가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며칠 뒤, 담당 교수님에게서 도착한 피드백 한 줄.
“이 공간은 단순한 리디자인이 아니라
삶의 재해석처럼 느껴집니다. ^^”
나는 그 피드백을 수십 번 읽었다.
설계적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보다 훨씬 더 큰 위로였다.
나의 ‘처음’이 누군가에게 닿았다는 것.
그날 나는 건축이
단지 벽을 세우는 일이 아니라
삶을 다시 이해하고 꺼내보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직도 나는 그 방에 산다.
그 방은 여전히 내 공간이다.
구조가 바뀐 건 아니지만,
나는 이제 창문을 자주 연다.
아침이면 빛이 들어오고
커튼 너머 나무 그림자가 벽을 따라 흐른다!
내가 설계한 건
단지 ‘물리적인 위치’만이 아니었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나의 감정’, ‘일상의 구조’, ‘다시 꾸는 꿈’이기도 했다.
아주 사적인 프로젝트였고,
누군가는 그냥 숙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첫 번째 설계, 회복, 그리고 용기였다.
나는 오늘도
작은 펜 하나로
내 하루를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