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by 언젠간 지을 집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공간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엘리베이터 안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그 작은 금속 패널 사이로

은은하게 들어오는 조명과

환기구의 배열이 이상하게 예뻐 보였다.


또 어떤 날은, 지하철을 기다리다 문득

승강장 바닥에 줄지어 박힌

노란 점자 블록과 대기선이 눈에 들어왔다.


‘왜 이건 여기 있는 걸까?’


‘누가 이 간격을 결정했지?’


‘이건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게 하려는 설계였을까?’



그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장면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질문이 되었고,

호기심이 되었고,

공부가 되었다.






공간은 말을 걸고 있었다.


건축공학을 처음 공부할 때는

‘공간을 설계한다’는 말이 왠지 거창하게만 느껴졌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공간은 ‘움직임을 설계하는 것’이기도 하고,

‘사람의 감정을 유도하는 장치’이기도 하다는 걸

조금씩 몸으로 느끼고 있다.


회사 사무실에서 잠시 창문을 바라볼 때,

유난히 답답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창문이 작아서만이 아니다.


책상 배치,

조명의 색온도,

천장의 높이,

심지어 벽의 재질까지.


공간은 늘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내가 바뀌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강의에서 ‘생활 속 건축 요소 분석하기’라는 과제를 받았을 때였다.

처음엔 막막했다.

특별한 건물에 가야 하나? 유명한 구조물을 찾아야 하나?


하지만 며칠 고민하다가, 나는 내가 매일 지나다니는 골목길을 선택했다.

집 앞,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작은 길.


그 길에는

낡은 벽돌 담장이 있었고,

작은 편의점이 있었고,

그 옆에는 유난히 햇빛이 오래 머무는 벤치 하나가 있었다.


나는 그 공간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걸음을 천천히 옮기고,

눈높이를 낮춰가며,

사람들이 왜 그 벤치에 자주 앉는지를 생각했다.


바람이 드는 방향,

건물 그림자가 드리우는 시간,

그리고 벤치 옆 자투리 땅에

심어진 작은 나무.


그 모든 것이 누군가의 ‘의도’와 ‘배려’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그 골목은 더 이상 ‘지나치는 곳’이 아니라

의미가 켜켜이 쌓인 공간으로 느껴졌다.



그게 바로 건축이구나.

그게 바로 사람을 위한 설계구나.






공간을 본다는 건, 나를 본다는 것


그런 경험들을 하나둘 쌓으며 느낀 게 있다.

공간을 새롭게 보기 시작하니

이상하게도 나 자신을 대하는 시선도 바뀌었다는 것.


이전에는

“난 도망쳤던 사람”

“건축과는 인연이 없던 실패자”

그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

“나는 다시 시작한 사람”

“이제 공간과 삶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사람”


건축을 다시 공부하면서

사물의 위치, 거리의 구조, 빛의 방향처럼

나라는 존재의 구조도 새롭게 설계하고 있는 중이다.


무너졌던 시절의 기억은

지금의 나를 만든 중요한 ‘기초’였다.






요즘 나는 ‘설계자처럼’ 걷는다.

그 말은 거창하게 무언가를 짓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저 공간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그 안에 스며든 삶을 느끼고,

사람이 머무는 이유를 고민하는 자세로 걷는다는 뜻이다.


그 걷는 속도와 눈높이는

예전의 나보다 조금 더 따뜻하고,

조금 더 단단하다.


이렇게 다시 설계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 내가

처음 맡게 된 ‘작은 과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누군가에겐 별것 아닐지 몰라도,

나에겐 첫 설계와도 같았던 작은 프로젝트.

그 위에 나는 나를 다시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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