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나는 '건축'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무너진 꿈은 어딘가 구석에 묻어둬야 덜 아플 것 같았다.
‘나는 건축이랑 안 맞았어’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수없이 반복하며 괜찮은 척했다.
회의실에서 쏟아지는 보고서 속 단어들과 씨름할 때도
출퇴근길 사람들 틈에 섞여 지하철 손잡이를 붙들고 있을 때도
내 머릿속 어딘가엔 늘 남아 있는 질문 하나가 떠돌았다.
“정말 이게 내가 살고 싶은 공간인가?”
그 질문은 점점 더 선명해졌고
어느 순간 ‘과거’로 밀어두었던 꿈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처음 다시 건축을 공부해보기로 결심했을 때, 그건 대단한 선언이 아니었다.
누구에게 말한 것도 아니었고, SNS에 ‘새로운 도전!’ 같은 글을 남긴 것도 없었다.
다시 그 세계를 마주하는 일이 조금은 무서웠던 것 같다.
내가 도망쳤던 곳이기도 했고, 그 시절의 상처가 다시 떠오를까 두렵기도 했고.
하지만 그보다 더 컸던 감정은 그리움이었다.
미련이라고 하면 더 정확할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이미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지금 이 선택이 또 하나의 실패가 되면 어쩌지?
수없이 스쳐가는 걱정 속에서도, 나는 결국 수강신청 버튼을 눌렀다.
그 조용한 클릭 한 번이 내 인생에서 다시 ‘설계’라는 단어를 꺼내는 출발점이 됐다.
예전에는 교과서 문장을 외우기 바빴다.
시험 범위 체크, 교수님 말버릇 파악하기, 과제 제출기한 계산하기.. 정작 이걸 왜 배우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하나하나 이해하려 했다.
이 단면이 왜 이렇게 설계됐는지, 하중이 어떻게 분산되는지,
그 이론이 실제로 어떤 공간에 쓰이는지 상상해보며 강의를 들었다.
머릿속에서 공간이 만들어지고, 빛이 스며들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건 건축학과를 다니는 일이 아니라, 건축을 이해하고, 삶을 설계하는 일이었다는 걸.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일이었다.
나는 20대 초반도 아니고, 이미 이 길을 멀리 돌아온 사람이었다.
또래들은 이미 자격증은 물론 포트폴리오도 화려한데 나는 이제 막 다시 선 하나 긋는 걸 배우는 중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조금씩 달라졌다.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한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살게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남보다 늦은 게 아니라,
나한테 맞는 속도로 걷고 있는 것뿐이라는 걸.
요즘 나는 아주 작은 것부터 다시 설계하고 있다.
단지 도면만이 아니다.
내 하루의 구조,
내 감정의 배선,
내 실패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이 모든 게 다시 짓는 ‘나만의 집’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벽돌 하나하나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다음 글에서는
어떻게 무너진 경험을 재료로 삼아
조금씩 건축이라는 세계와 다시 연결되고 있는지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언젠가, 우리 모두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만의 집을
지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