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를 하다 보면
언제나 “계획대로 되지 않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벽체를 올리고, 공간을 구상하고, 구조를 잡아도
현장에선 늘 변수가 생긴다.
설계자는 그때마다 도면을 다시 수정하고,
때로는 아예 철거하고 처음부터 다시 짓는다.
이번에 나는 내 인생의 도면을 수정하게 될 상황을
또 한 번 마주했다.
학점은행제로 공부를 시작한 지 6개월쯤 됐을 무렵,
나는 건축기사 시험에도 도전했다.
계획은 이랬다.
– 평일엔 퇴근 후 2시간씩 이론 정리
– 주말에는 문제풀이 스터디
– 출퇴근 지하철에서 단답형 암기
아주 단단한 루틴을 만들었고,
나름대로 꾸준히 준비했다.
그런데...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필기 점수는 간신히 통과했지만, 실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결과 발표 날, 노트북 앞에 앉아 조용히 창을 닫았다.
“괜찮아, 다음이 있잖아.”
겉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속으론 많이 무너졌다.
불합격 통보를 받고 난 며칠간,
나는 다시 예전처럼 자신을 의심했다.
‘이 길과 안 맞는 건 아닐까?’
‘다시 시작한 게 오만이었던 건 아닐까?’
‘그냥 이쯤에서 접는 게 나을까..’
SNS에선 누군가는 자격증 취득 인증샷을 올리고
누군가는 실무 후기, 포트폴리오까지 공유하고 있었다.
나는 멀고 느려 보였다.
다시, 비교.
다시, 침묵.
다시, 흔들림.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완전히 주저앉지는 않았다.
과거의 나는 한 번의 좌절에 스스로를 무자비하게 무너뜨렸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나의 실패가
전체 설계를 부수는 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때론 다시 레벨을 재고, 구조를 수정하고, 도면을 다듬는 것만으로
그 공간은 더 단단해질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렇게 나는 ‘왜 실패했는지’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 실기 연습량 부족
– 마감 감각의 미숙함
– 시간 배분 전략 부재
이유를 찾고 나니, 방향이 보였다.
나는 포기하는 대신 수정에 들어갔다.
나는 새로이 일정을 짰다.
다음 시험을 위한 플랜 B.
밤 10시부터 한 시간씩 기출문제 분석하기.
혼자 공부하지 않고 스터디 그룹에 합류하기.
이번엔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너져도 다시 짓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다.
건축이 그렇다.
완벽한 설계란 없다.
언제나 수정과 보완을 거치며,
결국엔 사람을 품을 공간이 완성된다.
삶도 그렇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날이 와도
우리는 늘 ‘수정선’을 그을 수 있다.
나는 지금 그 선 위에 있다.
그 선을 따라, 천천히
나만의 집을 짓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