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강신청을 누르며.

by 언젠간 지을 집

진짜 마지막 수강신청을 눌렀다.

유니와이즈 학점은행제 시스템에 로그인해서,

학위 신청에 필요한 나머지 몇 학점을 채우는 수업들을 골라 담았다.


‘이걸로 이제 끝이구나.’

라고 생각하려 했는데

마음 한켠에서

‘진짜 이걸로 괜찮은 걸까?’

라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학점은 쌓였지만 마음은 아직 덜 정리됐다


1년 반 전쯤,

두꺼운 건축 개론서 앞에서 멍하니 앉아 있던 게 생각났다.


‘이걸 진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남들보다 너무 많이 돌아온 건 아닐까’

그 질문에 대답해줄 사람은 없었다.


그냥 하루하루,

강의 듣고 과제하고,

주말마다 도면 연습하고,

시간 날 때마다 구조 계산 문제 푸는 일상이 이어졌다.


그렇게 채워진 건 학점이지만,

사실은 무너졌던 나 자신이기도 했다.






수료는 되는데, 실감이 안 난다


이제 학점은 140점이 넘었고,

전공 비율도 요건도 다 맞았다.

조금 있으면 학위 신청을 하고,

건축공학 ‘학사’가 된다.


그런데 실감이 안 난다.

왜일까.


‘졸업식’도 없고,

‘캡스톤 프로젝트’도 없고,

같이 축하할 학우도 딱히 없다.


그냥 혼자서 시스템에 접속해

누르고, 신청하고, 출력하면 끝.


그래서 그런 걸까.

어디서부터가 끝이고,

어디까지가 내가 만든 성취인지

경계가 흐릿한 기분도 든다.






그런데도 이건 분명 ‘내가 만든 결론’이다.


그래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시간은 누구도 대신 살아준 게 아니었다.


새벽 1시에 도면을 지우고 다시 그린 것도

출근 전 커피 한 잔 들고 강의 틀어놓던 것도,

누군가 축하해주지 않아도

나 스스로 ‘이번 과제 잘 해냈다’고 말하던 것도.


그 모든 순간들이

지금 이 수료의 바닥을 만든 거다.


그리고 그건 ‘과정’이라 부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는 이 과정을 ‘졸업’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학점은행제에는 졸업식이 없다.

모르겠다, 뭐 하나 사진이라도 찍을 수 있을까.

사무실에서 혼자 프린터 앞에 서서 학위증을 뽑는 장면이

나의 졸업 사진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분명, 무너졌던 곳에서

하나씩 벽돌을 다시 쌓았고

이제는 지붕 하나 얹어도 될 만큼의 공간을 만들었다.


그게 내 식의 졸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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