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와서 왜 나는
여전히 건축을 그리고 있을까?
유니와이즈원격평생교육원 수업을 들으며
학위를 따고, 과제와 시험 준비도 하고,
실무도 조금씩 엿보며,
사실 ‘이 정도면 됐지 않나’ 싶은데도
왜 나는 여전히
공간을 상상하고, 구조를 고민하고,
도면을 펼쳐 놓은 책상 앞에 앉는 걸까?
나는 이제 걷다가도 구조를 본다.
카페의 천장을 올려다보며
빔이 어떻게 놓였는지,
천장고는 얼마쯤 되는지 가늠하게 된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저 아파트 베란다의 단차는 왜 저렇게 났을까?
저 외벽 타일은 무슨 재료일까?
혼자 속으로 분석을 한다.
이젠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건축이 내 감각에 들어와 버렸다.
예전엔 초조했다.
한동안은
‘어떻게든 빠르게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자격증, 실무 경험, 포트폴리오…
하나씩 모으다 보면
나도 언젠간 어엿한 건축인이 되겠지.
그런데 요즘은
완성되지 않았다는 상태가 오히려 편하다.
이 길은 원래 ‘수련’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길이고,
나는 평생 이걸 계속 배워갈 사람이라는 걸
조금씩 인정하게 된 거다.

내가 건축을 좋아하는 이유는
‘크고 멋진 걸 짓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 조용히 살아갈 수 있도록
공간을 도와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음을 막아주는 벽,
햇빛을 자연스럽게 반사시키는 창,
지나가는 사람도 앉을 수 있게 배치된 벤치.
이런 걸 고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잘 보이진 않지만
누군가의 하루를 더 편안하게 해주는 공간을
기획하고, 그려내고, 제안하는 사람.
예전의 나는
‘완벽해야 시작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건축을 배우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불완전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
지금 가진 선으로 그려보는 것.
어쩌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
그게 설계자에게도 필요하고,
삶에도 똑같이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
시험과 상관없이,
성과와 무관하게,
지금도 나는 작은 도면을 하나씩 그린다.
누가 보지 않아도,
그 도면이 언제 실현되지 않아도,
이걸 그리고 있는 나 자신이
조금은 괜찮은 사람 같아서.
건축을 통해 내가 배운 건
'집을 짓는 방법'이 아니라
'살아가는 자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