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완벽한 공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비례가 정확하고, 구조가 안정적이고,
빛과 환기와 동선이 흠 없이 조화를 이루는 곳.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공간은 개념 속에만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다.
현장엔 늘 변수와 흔들림이 있고,
사람이 들어가는 순간
공간의 표정은 끝없이 바뀐다.
완벽함은 건축의 목표가 아니라
건축이 끝내 도달할 수 없는 하나의 환상이었다.
리모델링 현장에서 벽을 뜯다 보면
예상치 못한 흔적들이 튀어나온다.
메꿔야 하는 틈,
예전 도면과 어긋난 배선,
누군가 살았던 시간이 남긴 작은 파편들.
처음엔 그 모든 것을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보인다.
흠이 있다는 건,
그 공간 안에 누군가의 이야기가 있었다는 증거다.
흠 없는 벽보다
삶의 흔적이 남은 공간이 더 깊게 와닿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균열과 실패와 비틀림이 있어야
우리가 ‘살아온 사람’이 된다.
나는 한동안 ‘계획대로만 공부해야 한다’고 믿었다.
특히 건축공학 학점은행제 후기를 찾아보며
모두가 매끄럽게 학위를 따는 것처럼 보여
나는 더 흔들렸다.
하지만 막상 지나와 보니,
흠 없이 이어지는 배움은 존재하지 않았다.
과제가 밀리기도 했고,
도면이 마음처럼 나오지 않아
하루를 통째로 지우던 날도 있었다.
공부와 일, 생활의 균형도 매번 흔들렸다.
그 흔들림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완벽과 거리가 먼 과정이었지만
그 자체가 나만의 설계도였다.
완벽한 건축을 꿈꾸며 시작했지만
지금의 나는 오히려
불완전함 속에서 건축의 본질을 본다.
빛이 완벽하게 들지 않아
생겨난 그림자가 따뜻함을 만들고,
구조의 제약 때문에
오히려 창의적인 동선이 만들어진다.
삶도 그렇게 완성된다.
어긋남 속에서 길을 찾고,
흠 속에서 균형을 만들며,
계획과 다른 곳에서
새로운 문이 열린다.
완벽이 아니라
불완전한 채로 계속 지어가는 것.
그게 건축이고,
그게 삶이다.
다음 글에서는
‘공간을 대하는 마음’과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건축은 결국
나를 짓고,
다른 사람과의 거리를 설계하는 일이라는 걸
조금씩 깨달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