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함과 융통성의 균형
“수지청즉무어(水至淸則無魚), 맑은 물에는 고기가 없다.” 어릴 적, 아버지가 자주 하시던 말씀이다. 그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맑은 물이면 좋은 거 아닌가? 그런데 왜 고기가 없다는 걸까?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 말의 의미가 서서히 마음에 스며들었다. 그것은 ‘너무 깐깐하게만 살지 말라’는 삶의 가르침이었다.
아버지는 누구보다 정직하신 분이었다. 가짜를 보면 그냥 넘기지 못했고, 부당한 일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셨다. 그러면서도 자식들에게는 늘 말씀하셨다. “세상을 너무 칼같이 만 살면 안 된다.”
겉으로 보기엔 모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깊은 균형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정직하게 살되, 융통성을 잃지 말라는 뜻이었다. 어리숙할 정도의 아량이 있어야, 사람들이 따르고 관계가 지속된다는 말씀이었다.
사회에 나와 보니, 그 말이 얼마나 큰 울림을 주는지 실감하게 됐다.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지나치게 엄격해진다. 그런 사람 곁에는 점점 사람이 줄어든다. 정직함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가기 어렵다. 결국 사람을 붙잡는 힘은, 융통성과 너그러움이다.
잊지 못할 경험이 있다. 신입사원 시절, 고객 정보를 잘못 입력해 큰 사고로 번질 뻔한 적이 있었다. 이미 상황은 수습이 어려웠고, 큰 질책을 받을 줄 알았다. 그런데 팀장은 조용히 나를 불렀다. “이번 일은 내가 막을 테니, 두 번 다시 이런 실수는 하지 마.” 그 말은 어떤 꾸중보다 더 무서웠지만, 동시에 나를 신뢰해 주는 따뜻한 말이었다. 그는 윗선의 질책을 대신 감당했고, 나는 그날 이후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다. 그 신뢰가 내 태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인도에서 근무할 때였다. 한국 VIP와 인도 총리가 참석하는 대규모 전시회가 있었고, 실무진은 밤낮없이 준비에 매달렸다. 리허설도 완벽하게 마무리되었지만, 발표 도중 갑작스럽게 프레젠테이션 화면이 넘어가지 않는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PT를 진행한 기관대표는 즉흥적으로 위기상황을 넘겼지만, 이후 보인 그의 태도에 실망했었다. 문제는 기계 충돌로 인한 것이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그는 사람들 앞에서 짜증스러운 말투와 날 선 표정을 보였다. 죄 없는 직원들을 죄인으로 만들었다.
그날 나는 중요한 사실을 배웠다. 사람의 그릇은 위기에서 드러난다는 것. 실수 자체보다 더 부끄러운 건, 그것을 대하는 태도다.
그때 다시금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없다.” 너무 투명하면 생명이 살 수 없다. 너무 완벽을 추구하면, 결국 서로에게 부담이 된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때로는 상대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매 순간마다 흠을 찾아내 바로잡기보다는, 약간은 흐린 시선과 기다릴 줄 아는 여유가 더 나은 결과를 만든다.
정직은 기본이다. 하지만 정직만으로는 관계를 지킬 수 없다. 흠이 없는 사람보다, 흠이 있어도 남을 품을 줄 아는 사람이 존경받는다. 삶은 수학이 아니다. 정답을 찾기보다는 이해와 용서, 관용과 배려가 더 많이 필요한 세계다.
이제는 아버지의 그 한마디가 마음 깊이 와닿는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없다.” 세상이 흙탕물 같다고만 탓하지 말고, 그 안에서도 서로를 품고 살아가는 지혜를 길러야 한다. 그런 마음이, 결국 사람을 모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