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가야, 수자타 아카데미(Sujata Academy)
부다가야의 아침은 차분하고 고요했다. 마하보디 사원의 침묵, 보리수나무 아래 번져 있는 깨달음의 기운을 흠뻑 받았다.
다음 행선지인 '둥게스와 리(Dungeswari)'
지역과 그 아래 자리한 '수자타 아카데미
(Sujata Academy)'를 향했다. 대략 15여 분을 이동했었다.
수자타는 자비의 상징이다. 기원전 6세기.
싯다르타는 육 년 고행 끝에 지쳐, 이곳 둥게스와 리 언덕 아래에서 쓰러졌다. 그는 네란 자라 강에 몸을 담갔다가 기절했고, 가까스로 나뭇가지를 붙잡아 물가로 나왔다. 그 순간, 그 마을 소녀 수자타가 우유죽 한 그릇을 공양했다. 그 공양은 고행의 극단에서 '중도(中道)'로 향하는 전환점이 되었고, 붓다의 깨달음은 그로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둥게스와리는 한때 ‘시타림(屍陀林)’, 즉 공동묘지였다. 화장할 여력조차 없던 가난한 이들이 시신을 내다 버리던 곳으로 여기엔 불가촉천민들이 살았다. 접촉만으로도 부정을 탄다고 여겨졌던, 가장 낮은 신분(Caste)의 사람들이다.
2,500여 년이 지난 오늘도 이곳의 삶은 녹록지 않다. 16개 마을, 1만여 명이 이 황폐한 땅에서 품팔이, 채석, 구걸로 생계를 잇고 있다. 하루 1달러도 안 되는 수입. 농한기엔 주민의 90% 이상이 거리에서 구걸로 연명한다.
우리가 찾은 날도 농한기였다. 부처님이 명상하셨던 유영굴로 향하는 길, 언덕 양쪽으로 아이들과 노인들이 수백 미터 줄지어 앉아 있었다. 차가 멈추자 아이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내민다.
우리도 다른 순례자들이 하는 방식대로 조심스럽게 작은 사탕과 동전을 나눠주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가난을 넘어, '살아있는 자체가 고통’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떠오른 생각이었다.
“자비란, 나의 삶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껴안는 순간에서 시작된다.”
1994년, 법륜스님과 한국 정토회는 이 땅에 수자타 아카데미를 세웠다. 문맹률이 90%를 넘던 불가촉천민 자녀들을 위한 교육 공간이었다. 유치원부터 중등 과정까지, 교육과 의료, 영양급식, 마을개발이 함께 시작되었다.
이 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순환 교육’이었다. 졸업생이 다시 후배를 가르치며 교육의 불씨를 이어간다. 한국 청년 불자들이 중단기 봉사를 하며 함께 꾸려가는 따뜻한 공동체였다.
우리가 도착한 날, 아이들은 밝은 웃음을 지으며 마당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한 아이에게 물었다.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선생님이요. 의사요. 한국어 선생님이요.”
꿈은 맑고 크지만, 그 뒤에는 척박한 현실을 이겨내야 하는 무거운 삶이 있었다.
정토회는 지금도 하루 한 끼 급식, 정서 교육, 다양한 수업을 이어가며 단순한 시혜가 아닌 자비의 실천을 지속하고 있다. 이 활동은 인도 정부와 국제 NGO들 사이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자비의 순례는 매년 이어진다'
정토회는 매년 겨울,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성지순례를 진행한다. 콜카타에서 시작해 델리까지 12일간 이어지는 여정 속에 수자타 아카데미 방문은 빠지지 않는 필수 일정이다.
순례자들은 깨달음의 땅을 걷는 동시에, 그 깨달음을 가능케 했던 자비의 장소를 직접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다.
순례 마지막 날, 법륜스님은 델리 정토회 법당에서 1년간 영상으로 진행된 불교대학 수료식을 주재했었다. 지금은 교민들을 대상으로 즉문즉답 법회를 개회한다. 순례의 끝에서 묵직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오늘은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가난을 마주한 자들의 애처로운 눈빛이 더 오래 머물렀다.
수자타는 단지 우유죽 한 그릇을 건넸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자비는 한 사람을 붓다로 만들었고, 오늘날 수천 명의 삶을 바꾸고 있다. 작은 나눔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시작이 된다. 자비는 말이 아닌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수자타 아카데미 & 둥게스와 리 정보]
○위치:전정각산(둥게스와 리 힐) 아래, 부다가야에서 약 11km 거리
○운영
한국 정토회 :교육, 의료, 급식, 마을 개발 등 통합 지원
○역사
수자타의 우유죽 전설이 깃든 성지, 불가촉천민 거주지
○주요 방문지
유영굴, 네란 자라강, 수자타 사원, 전정각산 정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