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나시(Varanasi)에서
빛과 재의 도시를 마지막 일정으로 들렀다
부다가야에서 30여 분 차를 달려 도착한 바르나시(Varanasi), 힌두교 최대 성지이자,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손꼽히는 이곳은 한때 ‘카시(Kashi)’, 즉 ‘빛의 도시’로 불렸던 곳이다.
시간이 머물러 있는 듯한 이 도시는, 2,500년 전 붓다 시대와도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골목은 좁고, 덧없고 성스러운 일상의
연속이었다.
바르나시의 구시가지는 미로처럼 얽힌 좁은 골목들로 가득하다. 사람과 소, 오토바이, 오토릭샤, 자전거릭샤, 손수레, 그리고 소똥이 엉켜 있는 그 길은 처음 방문한 이에게는 혼란스럽고 낯설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일상이다.
길바닥 곳곳엔 말라붙은 소똥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특유의 냄새는 마스크를 쓰고 숨을 고르게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혼란과 냄새조차 이 도시에선 성스러움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갠지스 강은 삶과 죽음이 만나는 곳이었다. 도착한 갠지스 강변에서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커다란 장작더미였다.
'만리카르니카 가트(Manikarnika Ghat)'에선 하루도 빠짐없이 화장이 이루어진다. 시신은 장작더미 위에 올려지고, 그 재는 강물로 흘려보낸다.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은, 죽음을 기다리며 근처 게스트 하우스나 병원에 머문다.
화장은 계급과 재력의 차이를 그대로 드러낸다. 장작은 돈으로 무게를 재고, 돈이 부족한 유가족은 장작이 부족해 시신이 완전히 타지 못한 채 강물에 띄우기도 한다.
타고 있는 시신의 다리가 위로 치솟자, 인부가 몽둥이로 눌러 화력이 좋은 쪽으로 돌려놓는 장면은 충격적이면서도 묘하게 침착한 일상으로 다가왔다.
여기에선 죽음도 삶처럼 매일 반복되는 루틴이었다. 부모를 화장하는 유가족들은
하나같이 슬픔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었다.
궁금해서 유가족에게 물었다."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 왜 울지 않으세요."돌아온
대답은 "죽음은 더 좋은 생으로 태어나는
과정이기 때문에 슬픈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화장하는 광경을 지켜보는 건
괜찮지만, 사진촬영은 금기사항이다.
갠지스강은 힌디어로 ‘강가(Ganga)’라 하며, ‘빠르게 흐른다’는 뜻을 지닌다. 힌두인들에게는 신성한 어머니의 강으로 여겨지며, 불경에도 그 이름이 언급된다. 순례자들은 영하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물에 몸을 담그거나 머리를 감는다. 죄가 씻기고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주민들은 오염된 강물을 마시기까지 한다. 많은 이들은 이 강물을 물병에 담아 고향으로 가져가, 함께하지 못한 가족과 친지들에게 나누어준다. 그들은 강가의 물을 머리와 이마에 찍어 바르며 복을 기원한다.
강가에선 하층민이 빨래를 하고, 아이들이 수영하고, 방생된 소들까지도 물속을 유영한다. 삶과 죽음, 인간과 동물, 신성과 속됨이 경계 없이 뒤섞여 있었다.
해가 지면 갠지스 강가에서는 ‘디아(Diya)’라 불리는 작고 환한 등불이 떠오른다.
'다 샤슈와 메드 가트(Dashashwamedh Ghat)'에서 열리는 저녁 푸자 예불은 수백 개의 촛불과 꽃잎이 강물 위로 띄워지며 시작된다. 어둠을 밝히는 작은 불빛들은 죽은 자를 위한 위로이자, 산 자를 위한 기도였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 속엔 타다 남은 재와 슬픔이 섞여 있다. 삶과 죽음이 이렇게 조용히 어우러져 있는 곳, 그것이 바로 바르나시였다.
바르나시는 죽음의 도시가 아니었다. 오히려 죽음을 삶처럼 받아들이는 도시였다. 강물에 재를 뿌리고, 등불을 띄우며 기도하고, 다음 날의 해를 맞이하는 이곳 사람들의 삶이었다.
강가 근처엔 수백 년을 이어온 수공예 시장이 있다. 인도 전통 실크 사리, 자수 스카프, 손염색 직물이 즐비했고, 우리는 그중에서 선물용 스카프를 몇 장 골랐다.
저녁에는 현지식 치킨과 양고기 카레, 그리고 갓 구운 화덕난으로 허기를 채웠다. 그러고는 밤 8시 기차를 타기 위해 바르나시역으로 향했다.
하지만, 열차는 떠날 시간이 됐는데도 오지 않았다. 전광판엔 연착 안내문 하나 없었고, 직원들도 언제 도착할지 모른다 했다. 이렇게 황당할 수가 있나.
밤 10시, 자정, 새벽을 지나 우리는 지쳐 갔지만, 주변의 인도인들은 느긋했다. 아예 돗자리를 깔고 대합실 바닥에 누워 기다리는 모습은 이들의 또 다른 평온함이었다.
결국 기차는 14시간이나 지연되어 다음 날 오전 10시에야 도착했다.
나는 그 기다림 속에서 내 조급함을 돌아보고, 시간을 대하는 인도인들의 태도에서 작은 가르침을 얻었다.
이들은 이런 경우를 'No problem '
이라 했다. 결국에는 문제없다는 뜻의 느긋함이었다.
[바르나시 주요 순례지 ]
○만리카르니카 가트
갠지스 강 최대의 화장터, 힌두 윤회사상 상징지
○다 샤슈와 메드 가트
매일 저녁 푸자 예불이 펼쳐지는 대표 가트
○수공예 시장
인도 전통 실크, 자수, 손염색 직물의 중심지
○바르나시 기차역
인도의 시간 개념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장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