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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일본 최고봉 후지산 동계 등반기

3,000m 고지에서 히말라야 같은 매서움을 맛보

by 영 Young

"왜 산에 오르느냐"는 질문을 받은 어느 유명한 등반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곳에 산이 있기 때문이다.”

2월, 겨울의 정점이었다. 일본 최고봉 후지산(富士山, 3,776m)의 동계 등반을 위해 코오롱등산학교 동문들과 함께 팀이 꾸려졌다. 대장은 전문 등반가 김형주 씨가 맡았고, 남녀 총 14명(남자 10명, 여자 4명) 중에는 미국인 대원도 2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추어 팀이었지만 준비는 철저했다.

6개월 전부터 암벽, 설벽, 고산 극기훈련을 이어갔고, 4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눈밭을 걷는 러셀 훈련까지 마쳤다. 장비 일부는 코오롱스포츠에서 지원받았지만 대부분은 각자 부담했다. 특수 침낭, 아이젠, 피켈, 설벽화, 텐트, 기능성 의류 등 동계 등반에 필요한 장비를 하나하나 챙기며 설렘과 긴장이 교차했다.

후지산 정상

구정 연휴에 맞춰 우리는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다. 현지에서 연료와 생필품을 구매한 후, 대절한 마이크로버스로 밤 9시경 후지산 기슭 나가노 사야에 도착했다. 여름철이면 5 합목(2,300m)까지 차량이 오르지만, 겨울에는 모든 도로가 통제된다. 결국 ‘우마가에시’ 지점까지 이동해 첫 야영지를 마련했다.

영하 20도를 넘는 설한풍 속에서 눈을 녹여 ㅅ식수를 만들고 밥을지었다. 눈 위에 텐트를 치고, 침낭 속으로 몸을 웅크려 넣었다. 다음날아침, 눈은 이미 무릎까지 쌓여 있었고, 40kg 배낭을 지고 눈길을 헤치는 러셀 행군은 말 그대로 고행이었다. 숨이 턱에 차올랐고, 다리는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하늘은 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듯 투명했고, 눈 덮인 후지산 정상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그러나 눈앞에 떠있는 산봉우리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일, 이, 삼 합목을 지나며 십여 시간의 고투를 했었다. 베이스캠프인 5 합목 사토 산장(佐藤小屋) 인근 야영장에 도착했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산장은 굳게 닫혀 있었다. 기대했던 따뜻한 쉼터는 없었다.

다시 텐트를 치고, 언 손을 불어가며 밥을 지었다. 다음 날 예정된 ‘요시다 사 와 북벽’ 루트 정상 공격을 위해 우리는 침낭에 몸을 맡겼다.

밤새 텐트를 때리는 바람은 거셌고, 고기능 오리털 침낭도 영하 20도의 한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사토 산장은 여름에만 문을 연다. 여기서부터는 나무 한 그루 없는 화산재의 삭막한 경사면이다. 고산증과 피로가 겹쳤었다. 다음 날, 정상 공격계획을 하루 미루고 루트 파인딩과 고소 적응 훈련을 진행했다.

피켈 사용법을 익히고, 설벽을 오르내리며 훈련을 반복했다. 이 지역은 일본 히말라야 원정대조차 실전 연습을 하는 장소로, 외국 전문 산악인도 꺼릴 만큼 위험하다. 날카로운 바람과 극심한 추위는 히말라야 고산과 다를 바 없었다.

정상공격에 니선 필자

그다음 날 새벽 3시, 드디어 출발. 우리는 서로의 몸을 안자일렌(Anseilen) 로프로 연결했다. 한 명이 미끄러지면 그대로 추락할 수 있기에, 이 로프는 생명을 묶는 끈이었다. 북벽 루트는 관광용 등산로가 아니고 전문산악인 루트다. 눈보라와 강풍이 몰아쳤고, 얼굴은 냉기에 얼어붙었다. 손끝이 마비되고 숨이 거칠게 차올랐다. 초콜릿과 사탕, 빵, 물로 에너지를 보충해 가며 눈 덮인 얼음 벽을 기어올랐다.

정상까지 16시간 소요됐다. 예정보다 늦은 오후, 해가 지기 직전에 우리는 마침내 후지산 분화구 가장자리에 도달했다. 서로를 끌어안았고, 가져간 태극기를 펼쳤다. 바람이 태극기를 펄럭이게 했고,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그 눈물은 감동이자 안도, 그리고 살아 있다는 증표였다. 시간이 지체되어 어두워지기 전에 급히 서둘러 하산했다.

하지만 하산길에 사고가 발생했다. 한 중년여성 대원이 무모한 글리세이딩(glissading) 도중 100미터 아래로 추락한 것이다. 다리가 부러진 대형 사고였다. 즉시 주변 잡가지와 장비를 엮어 설매를 만들었다. 눈길을 밀고 끌며 5 합목 베이스캠프까지 필사의 하산을 감행했다.


이튿날 새벽, 대장은 적설량이 적은 스바루라인으로 산악스키를 타고 내려 가 구조 요청했다.

마지막 30분, 엠뷸런스가 대기 중인 사또산장 주차장까지 그녀를 옮긴 끝에 구조요원에게 무사히 인계할 수 있었다. 다행히 미국인 외과의사 대원 한 명이 응급처치를 해주어 큰 탈은 면했다.


첫날 야영 당시, 무게를 줄이기 위해 링지화와 여분 옷을 나무 밑에 묻어두었지만 하산 루트가 변경되어 끝내 되찾지 못했다. 아쉬움은 컸지만, 생명이 우선이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후지산이 저 멀리 푸른 하늘 위에 떠 있었다. 그 순간 떠올랐다.

“왜 산에 오르는가?”

그곳에 산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곳에는 내 한계를 넘어서는, 진짜 내가 있기 때문이었다. 후지산은 나를 시험했고, 나는 그 산 위에 작지만 분명한 나의 깃발을 꽂았다.


후지산 동계 등반 일정 (4박 5일)

주요 일정

1일 차

- 한국 출발 → 도쿄 도착

- 장비 및 생필품 구매

- 마이크로버스로 후지산 기슭 '나가노 사야' 도착

- ‘우마가에시’ 지점으로 이동, 첫 야영

2일 차

- 러셀 훈련 (무릎까지 눈 속 행군)

- 일~삼합목 통과

- 5 합목 사토 산장 인근 야영지 도착, 두 번째 야영

3일 차

- 날씨·피로로 인해 정상 등정 연기

- 루트 파인딩 및 고소 적응 훈련 (피켈, 설벽 등반 등)

- 세 번째 야영

4일 차

- 새벽 3시 정상 공격 시작

- 16시간 등반 후 후지산 정상 도달

- 하산 중 사고 발생 (추락, 응급처치, 구조 활동)

- 밤늦게 5 합목 도착 및 야영

5일 차

- 하산 완료, 응급 구조대에 환자 인계

- 도쿄로 복귀 후 귀국 비행기 탑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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