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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막걸리 한국인의 삶

막걸리 한잔의 가치

by 영 Young

“막걸리 한잔~”

지난해 트로트 경연 대회에서 한 가수가 이 노래를 시원하게 부르며 준우승을 차지했었다. 그는 막걸리에 담긴 우리 부모 세대의 애환을 꺼내고 고달팠던 아버지들의 삶을 녹여냈다. 노래는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리고 막걸리 한잔 생각이 절로 나게 했다.


막걸리는 단순한 전통주가 아니다.

집집마다 한국인의 삶과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문화유산이다.

막걸리는 예로부터 집집마다 손수 만들어 마시던 술이다. 제조 방식도 다양해 맛도 제각각이었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항상 일꾼들이 북적였다. 엄마가 빚은 막걸리는 허기진 일꾼들의 배를 채우고, 기분까지 좋게 해주는 에너지 음식이었다. 일정 기간 숙성을 거쳐야 비로소 맛이 나는 술이다. 인생도 그와 다르지 않다. 힘든 시간을 인내하며 묵묵히 기다릴 줄 알아야, 깊고 진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따뜻한 방 아랫목에 덮여 있던 항아리, 술 익는 냄새가 풍기던 그 시절의 기억은 막걸리와 함께 각인돼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부에서 밀주를 금지하며 허가받은 술도가에서만 술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단속반이 마을을 돌며 긴 장대로 집안 구석을 찔러보며 술단지를 찾았다.

법으로 금지되었지만, 몇몇 집에서는 여전히 술을 숨겨가며 만들었다. 그만큼 막걸리는 우리 조상들의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다.

우리 아버지는 술을 전혀 하지 못했지만, 집안에는 늘 막걸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손님이 오면 어김없이 술상이 차려졌었다.

그 정성은 곧 집안의 품격이 되었다. 나는 술을 잘 못하지만, 어느 순간 친구들과 한두 잔씩 나누는 습관이 생겼다. 지금은 막걸리 애호가가 되었다. 한 잔만 마셔도 기분이 좋아지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떠오른다. 글을 쓰는 영감이 피어오르고, 잠자던 용기마저 꿈틀거린다.

막걸리 힌시발

등산을 좋아하는 나는 산에 오를 때마다 막걸리를 챙긴다. 함께 오르는 동료들은 내 배낭에 막걸리가 있다는 걸 안다. 땀 흘린 뒤 정상에서 마시는 시원한 한잔은 세상 모든 행복이 입 안으로 들어오는 듯하다. 이를 ‘정상주’라 부른다. 산행을 마치고 점심 자리에서 나누는 막걸리는 ‘하산주’로서 우리의 무사 산행을 축복한다. 작은 한 잔이지만 동료애가 깊어지는 순간이다.


중동 출장 때다. 그곳은 술이 금지된 나라다. 그러나 몇몇 우리 산업역군들은 누룩을 몰래 들여와 막걸리를 빚어 마시고 있었다. 외로운 건설 현장에서 그 술은 에너지원이자 동반자였다.

요즘 막걸리는 또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서울 도심의 막걸리 바에서는 젊은 남녀들이 모여 딸기, 유자, 블루베리 등 다양한 맛을 즐긴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K-전통주로 알려지며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이제 막걸리는 과거 농부들의 술을 넘어, 한국적인 낭만과 건강을 함께 전하는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막걸리는 단순한 술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전통이자, 한국적인 낭만이다. 시대를 관통해 온 민초의 역사다. 막걸리는 그냥 정통술이 아니라

우리 삶의 한 페이지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는 정과 문화의 상징이다.

막걸리에는 유산균도 많아 적당히 마시면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이번 주말, 오랜만에 만나는 고향 친구와 수제 막걸리 한잔을 나눌 생각이다. 그 한 잔 속에 지난날의 정 과 웃음, 그리움까지 함께 담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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