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ABC)
TV 속 히말라야 설산을 처음 본 건, 아마 고등학생 때였을 것이다. 하얗게 눈 덮인 봉우리와 구름 위로 고개를 내민 장엄한 풍경은 내게 막연한 동경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일상은 늘 바빴고, 세월은 빠르게 흘렀다. 그렇게 내 마음속에만 있던 히말라야는 오랫동안 잊힌 꿈이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그 꿈에 다가갈 기회가 찾아왔다. 나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트레킹을 결심했고, 인도 뉴델리를 거쳐 네팔 카트만두로 향했다. 인도에서 짧은 비행 끝에 도착한 카트만두 공항에서는 택시 기사들의 호객과 거리의 먼지, 매연이 나를 맞이했다. 낯선 공기 속에서 “그래, 내가 정말 히말라야에 왔구나” 하는 실감이 밀려왔다. 설렘이 피로를 잊게 했다.
카트만두 시내의 한인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를 보내며, 포터 겸 가이드인 건장한 '꾸마'씨를 만났다. 하루 10달러, 부담 없는 조건이었다. 다음 날 새벽, 구불구불한 비포장 산길을 따라 8시간을 달려 포카라에 도착했다. 아이를 안은 현지 여성, 중간중간 승하차하는 주민들, 창밖으로 스쳐 가는 산골 마을들, 모든 장면이 이국적이면서도 어딘가 정겨웠다.
저녁 무렵, 포카라에 도착했다. 페와 호수 너머로 마차푸차레(6,993m)의 봉우리가 솟아 있었다. 마치 신이 만든 삼각형 설산, 찐한 감동이었다. 그제야 히말라야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온몸에 와닿았다.
다음 날, 페와 호수에서 배를 타며 여유를 즐기고, 저렴하게 마련한 가짜 브랜드 스틱, 의류등을 챙겨 준비를 마쳤다. 때는 10월, 히말라야 트레킹에 가장 적합한 계절이었다.
포카라에서 약 1시간 반 버스를 타고 나야풀에 도착한 후, 입산 허가증을 발급받고 다시 1시간 반 동안 지프를 타고 울레리까지 이동했다. 이곳에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완만한 돌계단을 따라 약 5시간을 걸었다. 꾸마는 40kg이 넘는 짐을 짊어졌고, 나는 10kg 남짓한 배낭만 메고 한 걸음씩 나아갔다. 중간중간 들려오는 “나마스떼” 인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마음이 서서히 열렸다. 마주치는 트레커들과 주고받는 짧은 농담과 인사는 큰 즐거움이었다.
고레파니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 날 새벽 4시, 헤드랜턴을 켜고 푼힐 전망대
(3,210m)로 향했다. 어둠을 헤치고 고지에 올랐을 때, 붉게 물든 다울라기리
(8,167m)와 안나푸르나(8,091m)가 눈앞에 펼쳐졌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었다. 모두가 숨을 죽이거나, 혹은 탄성을 지르며 그 장관을 사진 속에 담았다.
출발 지점인 고레파니까지 내려왔었다. 다시 고도를 올리며 타다 파니까지 약 8시간을 걸었다. 수천 개의 돌계단이 지그재그로 이어졌고, 그 힘듬은 예상 이상이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고산지대에 접어들었다. 매일 8시간 이상을 걷고, 하루 평균 1,500m씩 고도를 올리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아열대 숲 속에서 사는 원숭이, 각종 희귀 새들을 볼 수 있었다. 빙하가 녹아 거대한 계곡을 만들고, 좌우 산허리에는 폭포수가 쏟아지고 있었다. 고도가 높아지며
고산식물이 자리고, 추위에 녹지 않은 눈길
이 이어졌다.
시누와, 데우랄리(3,200m) 로지에서 하루씩 머물렀다. 점점 희박해지는 산소에 숨이 가빠졌고 두통이 심했다. 준비해 간 파나돌을 먹고 버텼다. 고산병의 전조였다. 히말라야 앞에서 나의 의지는 너무나 작고, 산은 그 앞에서의 겸손을 가르쳤다.
다섯째 날,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 3,700m)를 지나 마침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4,130m)에 도착했다. 사방을 둘러싼 설산들이 해 질 녘 붉게 물들며 나를 감쌌다. 마치 세상 모든 소리와 시간이 멈춘 듯했다. 베이스캠프 한편에는 조용히 놓인 추모의 돌탑들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안나푸르나 정상을 오르다 생을 마친 한국 산악인들의 흔적이었다. 나는 조용히 두 손을 모아 명복을 빌었다. 그들의 꿈과 고통, 그리고 평안이 이곳에 머무는 듯했다.
이튿날 새벽, 두통을 참아가며 전망대로 다시 2시간을 걸었다. 몸은 무거웠지만, 황금빛으로 깨어나는 설산 앞에서 모든 고통은 사라졌다. 헤드랜턴 불빛 아래 서서히 퍼지는 태양빛. 뜨거운 블랙티 한 잔으로 몸을 녹이며 그 장면을 가슴 깊이 새겼다.
하산길,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언젠가 다시 이곳에 오게 될까. 도반과 지누단다에서 각각 하룻밤을 보내고, 나야풀로 내려왔다. 트레킹은 끝났지만, 내 안의 어떤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된 듯했다.
히말라야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었고, 자연 앞에 선 나 자신을 다시 마주하는 자리였다. 지누단다의 온천수처럼 따뜻하게 스며든 그 위로를, 나는 언젠가 다시 느끼고 싶다. 그 거대한 설산이 건네는 침묵의 메시지를, 다시 듣고 싶다.
《히말라야 트레킹 일정표》
–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7박 8일
※ 실제 일정은 기후, 체력, 숙소 사정 등에 따라 유동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날짜, 구간, 해발 (m)]
주요 일정
1일 차
포카라 → 나야풀 → 울레리
1,540m → 2,050m
차량 이동 / 입산 허가 / 트레킹 시작
울레리 → 고레파니
2,050m → 2,860m
오르막 / 돌계단 / 숲길 트레킹
2일 차
고레파니 → 푼힐 일출 → 타다 파니
3,210m → 2,630m
일출 감상 / 능선길 이동
3일 차
타다 파니 → 시누와
2,630m → 2,360m
숲길 / 계곡 경유 / 마을 로지
4일 차
시누와 → 데우랄리
2,360m → 3,200m
고도 상승 / 고산지대 진입
5일 차
데우랄리 → MBC → ABC
3,200m → 4,130m
고산 트레킹 / 베이스캠프 도착
6일 차
ABC 일출 감상 → 하산 → 도반(숙박) 4,130m ↓
일출 / 하산 시작
7/8일 차
지누 단다(숙박)→ 나야풀 → 포카라
하산
트레킹 종료 / 복귀 이동
[트레킹 참고]
총 거리: 약 70~80km
적정 시즌: 가을 (10,11월) / 봄꽃 시즌 (3,4월)
고산병 예방: 하루 500~700m 이내 상승, 수분 섭취 충분히, 천천히 걷기
필수 장비: 방수 재킷, 헤드랜턴, 보온병, 방한복, 선크림, 방수커버, 트레킹 스틱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