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이고 해안가에는 흰 제복을 입은 해군 병사와 간호사가 열정적으로 키스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대형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당시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서 촬영된 유명한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동상은 두 사람이 갑작스럽게 키스하는 순간을 생생히 담아내고 있으며, 이는 전쟁의 종식과 승리를 축하하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동상은 기쁨, 승리,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느끼는 해방감을 표현하고 있다.
동상 옆에는 퇴역 항공모함 미드웨이호가 해양 박물관(Midway Museum)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곳은 많은 관광객이 찾는 인기 명소 중 하나다. 이는 전쟁의 아픔과 역사를 후세에 전하며 중요한 교육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은퇴한 부부들로 이루어진 우리 일행은 동상 앞에서 각자의 감정을 담아 추억 사진을 남겼다."
해군 병사 키스장면 동상
우리는 샌디에이고에서의 일정을 아쉬움 속에 마무리했다. 우리 부부는 늘 패키지여행을 선호한다. 주요 관광지와 숙박, 식사를 전문가가 체계적으로 준비해 주니 시간과 비용 면에서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호텔 로비 식당에 들어섰을 때, 좌우로 나뉜 두 구역이 눈에 띄었다. 음식이 더 다양해 보이는 우측으로 향하려던 찰나, 직원이 좌측으로 안내했다. “왜 여기는 이용할 수 없나요?”라고 묻자, 직원은 그곳이 VIP 전용 구역이며 단체 투숙객은 좌측을 이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순간 작은 자존심 상함을 느꼈지만, 곧 패키지 선택으로 인해 생긴 상황임을 깨닫고 웃어넘겼다. 이는 여행 중 유연함의 가치를 배우게 한 순간이었다.
샌디에이고는 인구 약 100만 명의 해변 도시로, 거리 곳곳은 자카란다 나무로 가득했다. 봄이 되면 이 나무들이 보랏빛 꽃으로 물들며 도시를 아름답게 꾸민다고 했다. 은퇴자와 퇴역 군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샌디에이고의 해군 본부는 한국의 진해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훌륭한 골프 환경 덕분에 많은 한국 골프 꿈나무들이 이곳에서 훈련을 했고, 최경주 선수도 약 30년 전 이곳에서 연습했다고 들었다. 씨월드와 테마파크에서는 다양한 해양 생물을 볼 수 있었지만, 일정이 바빠 방문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올드 타운 민속 마을
1769년 천주교 신부가 설립한 올드타운은 200년이 넘은 성당과 관공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약 1,500명의 주민들이 옛 건물들을 관리하며 식당과 상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고풍스럽고 아기자기한 이 도시를 눈에 담기에도 시간이 부족했지만, 손자 선물을 찾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2층 해변 열차
올드타운에서 우리는 2층 열차를 탔다. 약 40분 동안 아름다운 해변을 달리며 석양이 물든 바다를 바라보았다. 긴 여행의 여정이 끝나감을 느끼며 잠시 상념에 잠겼다. 이번 여행은 새로운 장소를 보는 것을 넘어, 평범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발견하게 해 주었다.
열차는 오션 역에 도착했고, 대기 중이던 버스를 타고 LA 공항으로 향했다.
미국 여행의 마지막 식사는 LA 공항 근처에서 했다. 본토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 칙필레(Chick-fil-A)의 햄버거를 선택했다. 부드러운 빵 속에 바삭하게 튀긴 닭고기와 신선한 채소, 치즈가 듬뿍 들어 있어 맛있었지만, 양이 많아 남겼다. 큼직한 감자튀김도 푸짐했다. 아내는 “손자가 좋아할 거야”라며 먹지 않은 음식을 포장해 가방에 넣었다.
칙필레(Chick-fil-A)
함께했던 41명의 투어 멤버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낯선 사람들과 보낸 짧은 시간은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따뜻한 미소와 배려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탑승을 기다리던 중, 한 외국인이 내게 의자 밑에 떨어진 휴대전화를 알려주었다. 확인해 보니 내 것은 아니었고, 앞서 있던 승객의 것으로 보였다. 깊숙이 떨어져 손이 닿지 않아 멀리 있던 노인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의 지팡이를 이용해 휴대전화를 꺼낼 수 있었다. 보안원에게 전화기를 건네자, 그는 급히 보딩 게이트로 들어갔다. 잠시 후 빈손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며 주인에게 무사히 전달된 것 같아 안심했다. 귀여운 아기 사진이 배경 화면이던 그 휴대전화가 제자리를 찾았기를 바랐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소중했던 것은 아내와 함께한 시간이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놓쳤던 서로의 미소와 대화를 다시 찾을 수 있는 기회였다.
여행은 단순히 새로운 장소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었다.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게 하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삶에 작은 변화와 긴 여운을 남겼다.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LA의 찬란한 불빛은 내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