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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추석 차례

조상을 모시는 마음, 우리를 잇는 시간

by 영 Young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어서 오십시오. 많이 드십시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무릎을 꿇은 채 절을 올리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이렇게 절하는 거란다.”

손주들과 함께하는 추석 차례는 언제나 마음 깊은 곳까지 따스한 감동이 스며든다.

선조들의 가피와 가족의 온기가 한데 어우러지는 순간이다.

홍동백서, 어동육서.

각가지 음식과 과일로 가득 찬 두 개의 긴 상은 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풍성하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신기해하고, 어른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추석은 한 해의 풍년을 기리고, 조상님들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우리 고유의 최대 명절이다.

이날은 흩어졌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조상님께 차례를 올리고, 정을 나눈다.

벌초로 말끔히 단장한 묘역을 찾아뵙기도 하고, 가족의 뿌리를 되새기는 날이기도 하다.


나는 고향을 떠나온 지 오래되어 직접 성묘를 자주 가지는 못한다.

대신 매년 11월, 친척들과 함께 묘사를 지내며 그 마음을 잇는다. 여기에는 약 200여 명이

함께한다. 마지막에는 조상묘소 주위에

빙 둘려 앉아 제물을 나누고 음복한다.

그럴 때마다 어린 시절 추석의 기억이 떠오른다.

엄마가 시장에서 사다 준 새 옷을 입고, 새 신발을 신던 날이다. 가족과 함께 조상님께 차례를 올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던 행복한 순간이었다.

친척들께 용돈을 받을 수 있어 더없이 즐거웠다. 명절

전날 밤에는 설레는 마음에 잠조차 이루지 못했다.


새벽이 밝으면 5대조 이상을 모시는 큰집으로 갔다.

50여 명의 어른과 아이들이 모여 차례를 지냈고, 차례 후에는 풍성한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이후 우리 집으로 옮겨 4대 이하 조상님께 차례를 올렸다.

그렇게 아침을 두 번 먹고, 윗대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며 인사를 다녔다.

오후 두 시쯤이면 모든 일정이 끝나고, 산소로 성묘를 갔다.

예전에는 부모님이 직접 일손을 빌려 벌초를 하셨지만,

지금은 종중에서 일괄적으로 관리한다.

조상님들이 남겨주신 종중 재산 덕분이다.

옛날엔 버려지다시피 했던 논밭이 개발되어 이제는 제법 많은 수익을 내고 있다.

그 수익은 장학금, 노령연금, 묘지 관리와 묘사 제물 준비 등으로 쓰인다.

조상님들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편히 사는 셈이다.


이번 추석은 비가 내리고 날씨도 선선했 다.

지난해 더위에 비해 차례상 준비는 수월했지만, 제수 음식과 과일값이 폭등했다.

폭염과 폭우로 농산물 수확이 줄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조상님 상을 줄일 수는 없다.

정성과 예는 그대로 지켜야 한다.


이제는 산업화와 핵가족화로 가족들이 모두 따로 산다.

그래서 명절은 더욱 소중하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조상님께 감사드리고, 가족 간의 정을 되새긴다.

또한 이웃, 친척, 친구들과 안부를 나누며 관계를 돈독히 한다.

요즘은 편리함을 이유로 차례를 생략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시대의 변화라 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전통은 이어져야 한다.

한국의 성장과 발전의 바탕에는 가족의 결속과 공동체 문화가 있었다.

차례는 그 중심이었다.


만약 조상을 기리는 전통이 사라진다면,

친족 간의 유대가 끊어지고 공동체적 정서가 약해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차례를 이어가야 한다고 믿는 이유다.


요즘 세계가 K-문화에 열광한다.

한식, 한복, K-pop뿐 아니라,

우리의 ‘차례’ 문화 또한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조상을 공경하고 가족을 하나로 잇는 이 전통이야말로

진정한 K-정신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묘제 음복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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