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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 Young Nov 28. 2024

(20) 뉴질랜드 경제위기에서 얻은 교훈

과도한 복지의 부작용

 신이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겨둔 파라다이스는 단연 뉴질랜드라 할 수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이 지상

낙원은 맑은 공기, 청정한 바다, 풍부한 녹지 덕분에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관광 명소이자, 남태평양의 복지 선진국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번영 뒤에는 한때 심각한 경제 위기와 정책 실패를 경험했던 역사가 있다.


 1986년, 우리 가족은 뉴질랜드에서 잠시 머물렀다. 당시 뉴질랜드는 단순히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라, 복지 제도와 정책 설계가 국가의 성패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였다. 그곳에서 나는 과도한 복지가 어떤 부작용을 가져오는지,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개혁의 필요성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뉴질랜드 목초지/다운 받은사진

 뉴질랜드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제도를 자랑했다. 신생아부터 청소년까지 국민들에게는 아낌없는 혜택이 제공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는 우유, 병원비, 돌봄 수당, 학비 등이 무상으로 지원되었고, 놀랍게도 외국인에게도 동일한 혜택이 주어졌다. 우리 가족은 잠시 머무르는 외국인이었음에도 매일 아침 집 앞에 배달되는 생우유 2리터를 무료로 받았고, 아이 엄마의 계좌로는 매주 돌봄 비용이 입금되었다.


 이러한 관대한 복지 정책은 처음에는 국민들에게 환영받았으나, 시간이 지나며 문제점이 드러났다. 외국인들조차 이 혜택을 적극적으로 누리며 일부는 이를 악용하기까지 했다. 한 예로, 동남아 출신 한 가족은 복지 혜택으로 받은 돈을 3년간 모아 고향에 집을 샀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더 큰 문제는 과도한 복지가 국민의 노동 의욕을 저하시켰다는 점이다. 실업수당이 일을 해서 버는 돈과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일을 포기하고 실업수당에 의존했다. 이는 국가의 생산성을 저하시켰고, 일을 하는 사람들마저 의욕을 잃게 만들었다. 심지어 한국 이민자들 중에도 복지 혜택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려는 사례가 늘어났다.


 복지 외에도 문제는 있었다. 당시 뉴질랜드의 노동법은 지나치게 엄격했고, 노조의 권한은 매우 강력했다. 이로 인해 작업장에서 비효율적인 일이 빈번히 벌어졌다. 예를 들어, 포클레인 기사가 작업 도중 퇴근 시간이 되면, 흙이 가득 담긴 포클레인을 안전하게 땅에 내려놓아야 하지만, 이를 허공에 둔 채 퇴근하는 관행이 지속되었다. 이러한 융통성 없는 행동들은 국가 경쟁력을 심각하게

약화시켰다.


 결국, 뉴질랜드 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1970~80년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잘 사는 나라였던 뉴질랜드는 1990년대에 들어 순위가 급격히 하락하며 수십 위권으로 추락했다. 경제적 위기는 국민의식의 타락으로도 이어졌다.


 1990년대에 들어선 새로운 정부는 강력한 구조 개혁을 단행했다. 복지 제도는 대대적으로 개편되었고, 과도했던 실업수당은 축소되었다. 아이 돌봄 복지도 현실적인 수준으로 조정되었으며, 노동법과 노조의 권한 역시 재정비해 경제 활동의 유연성을 높였다. 이러한 개혁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결국 뉴질랜드는 2000년대 들어 경쟁력을 다소 회복하고 안정적인 경제 기반을 다시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전의 경쟁력을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했다. 이는 한 번 무너진 경제와 사회적 기반을 복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교훈이다.


 뉴질랜드가 겪은 위기와 극복의 역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국가는 국민의 복지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지만, 그 균형이 깨지면 오히려 국가와 국민 모두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 복지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지만,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비효율적인 제도는 국민의 자립심과 경제적 역동성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를 돌아보면, 과거 뉴질랜드와 닮은 점이 적지 않다. 복지의 확대는 분명 필요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경제적 기반과 효율적인 정책 설계 없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뉴질랜드가 고통스러운 개혁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듯, 우리도 지금의 문제를 직시하고 필요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삐걱거리는 현상을 방치하지 않고, 빠르게 대처할 때만이 나라의 미래를 밝게 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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