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손주의 똥
손주와의 일상 속에서 발견한 사랑과 행복
"채온이 똥 쌌어요. 기저귀 갈아주세요."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면 나는 누구보다 빨리 거실로 달려간다. 세 살배기 손주는 우리 집의 보물이다. 이 녀석의 똥 기저귀를 갈아줄 때마다 나는 묘한 행복을 느낀다. 다른 사람에게는 꺼려지는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다. 손주의 똥 기저귀 담당은 내가 자청해서 맡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손주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밤알같이 단단한 똥, 묽은 똥, 염소똥, 심지어 설사똥까지 확인한다.
이런 똥들이 때로는 건강 상태를 알려주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 손주의 똥 냄새는 내게 더럽거나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기저귀를 갈아주는 이 짧은 시간에도 나는 손주와의 연결을 느끼며 사랑을 실감한다.
손주와 함께하는 순간들은 늘 즐겁다. "할아버지 좋아?"라고 물으면 손주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당연스럽게 "할머니 좋아!"라고 대답한다. 손주에게 나는 항상 후순위이지만, 그게 싫지는 않다. 손주의 밝게 웃는 얼굴과 재롱은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게 만든다. 방 안을 온갖 장난감으로 난장판을 만들어도, 밤새 울어도, 심지어 고집을 부릴 때조차도 손주가 사랑스럽기만 하다.
사실 자식들을 키울 때는 느끼지 못했던 이런 감정을 손주를 통해 비로소 느끼고 있다. 당시에는 일과 가정을 동시에 책임지느라 정신이 없었고, 자녀들의 성장 과정을 세세히 즐길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손주의 작고 따뜻한 손을 잡을 때마다 그 소중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얼마 전 손주와 가족들에게 잊지 못할 일이 있었다. 손주의 삼촌, 그러니까 내 아들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이었다. 손주는 결혼식에서 신랑에게 꽃바구니를 전달하는 화동 역할을 맡았다. 결혼식장에 도착했을 때부터 손주는 화려한 옷을 입고 기분이 좋아 보였다. 우리는 이 작은 화동이 결혼식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가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화동 입장"이라는 사회자의 멘트가 떨어지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출발선에 서 있던 손주가 갑자기 울상을 짓더니 움직이지 않았다. 다들 어리둥절해하는 가운데, 나는 다가가 손주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상황이 이해됐다. 손주는 물똥을 한 바가지 쏟아낸 상태였다. 바지는 축축하게 젖었고, 상황은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손주는 그 작은 몸으로 최선을 다했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 꽃바구니를 들고 천천히 무대를 걸었다. 엉거주춤한 걸음과 살짝 찡그린 얼굴은 보는 이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긴장된 순간 속에서도 손주는 삼촌에게 꽃바구니를 무사히 전달했다. 하객들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고, 나 또한 손주의 용기에 감동했다. 물론 주위에서는 똥 냄새가 난다며 웅성거렸지만, 나는 그날 손주의 똥마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똥은 단순히 더럽고 불쾌한 것이 아니다. 옛말에 똥 꿈을 꾸면 부와 행운이 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실제로 똥은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농촌에서는 거름이 되어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인도나 아프리카에서는 땔감과 집 짓는 재료로 쓰인다. 똥은 그 자체로는 냄새나고 보기 싫을 수 있지만, 그것이 만들어내는 결과는 생명을 살리고 환경을 풍요롭게 만든다.
우리 손주의 똥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내게 기쁨과 웃음을 가져다준다. 손주의 똥은 그 자체로는 사소해 보이지만, 그것을 통해 나는 손주가 얼마나 건강하고 밝게 자라는지를 확인한다. 기저귀를 갈아주며 손주의 체온과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순간들은 내게 단순한 일상의 반복이 아니라, 손주와 함께하는 특별한 시간이 된다.
이제 손주는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 기저귀를 갈아주는 시간이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하지만 이 특별한 순간들은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손주의 똥 기저귀를 갈며 느꼈던 행복과 사랑은 나를 더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손주의 똥은 내게 단순한 배설물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풍요와 사랑을 상징하는 보물이다. 손주와 함께 웃고, 울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할아버지가 된다. 결국 손주의 똥은 우리 가정에 웃음꽃을 피우고, 나에게는 삶의 새로운 기쁨을 안겨주는 특별한 선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