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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화장실, 문명의 발전을 담은 공간

첨단기술이 적용된 한국의 'K-화장실'

by 영 Young

모든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 먹고 배출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중에서도 인간은 배설을 단순한 생리적 과정으로만 두지 않고, 이를 위한 공간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왔다. 화장실의 변화는 곧 문명의 발전을 상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장실의 역사적 변화와 현대적 역할을 살펴보면, 우리는 생활환경 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17세기말, 오스트리아 여행가 헤세바르테크는 조선의 수도 한양을 방문한 후 여행기를 남겼다. 그는 "도로 곳곳이 인분으로 덮여 있어,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도시"라고 기록했다. 당시 조선에서는 위생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노상 방뇨를 하거나 배설물을 아무렇게나 버리는 일이 흔했다. 심지어 궁궐 주변이나 시내 한복판에서도 이런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도시는 악취로 가득했고, 전염병이 쉽게 퍼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한양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당시 유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런던과 파리 같은 대도시에서도 길거리에 배설물을 버리는 것이 일상이었고, 이로 인해 전염병이 유행했다. 실제로 19세기 중반 런던에서는 "대악취(Great Stink)" 사건이 발생해 도심이 심각한 악취로 뒤덮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하수도 시설이 대대적으로 정비되었다.


우리나라 역시 오랜 시간 동안 열악한 화장실 환경을 겪어왔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가정은 푸세식 재래화장실을 사용했다. 골목골목 똥수레, 똥차가 다니며 배설물을 수거했다. 이 과정에서 심한 악취가 발생했다. 여름철에는 파리와 구더기가 들끓었으며, 위생 상태는 심각하게 열악했다. 농촌 지역에서는 마당 한편에 간이 화장실을 만들어 사용했는데,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 악취가 더욱 심해졌다.


군대, 학교, 공중화장실 역시 깊은 푸세식이 대부분이었다. 제대로 된 시설이 없어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고, 겨울에는 차가운 공기 속에서 용변을 봐야 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변소와 처갓집은 멀어야 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당시의 화장실은 불편하고 기피해야 할 공간이었다.


특히 겨울밤에는 화장실을 가는 것이 큰 일이었다. 우리 집 변소는 집의 본체와 떨어져 있었다. 영하의 날씨 속에서 바깥으로 나가야 했다. 어린 시절에는 캄캄한 밤이 무서워 엄마를 깨워 함께 가곤 했으며, 화장실을 가기 위해 손전등을 들고 나서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나 이제 화장실은 단순한 배설 공간이 아니라, 생활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주택 설계에서 화장실과 주방은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으며, 고급 아파트에는 비데와 온열 변기가 기본 옵션이 되었다. 현대적인 화장실은 위생과 편리함을 갖춘 공간으로 발전했고,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자동 환기 시스템과 항균 기능까지 도입되었다.

한국의 공공화장실은 이제 세계적인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요 관광지와 대도시의 공공화장실은 호텔 수준의 청결도를 자랑하며,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 화장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거나, 센서를 이용해 자동으로 물이 내려가는 등 첨단 기술이 적용된 곳도 많다. 외국인들은 한국의 화장실 시설에 감탄하며, 이를 'K-화장실'이라 부르며 극찬한다.


그렇다면 전 세계가 모두 이렇게 깨끗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을까? 아직도 세계 인구의 상당수가 열악한 화장실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현재도 20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기본적인 위생 시설 없이 생활하며, 많은 이들이 노상 배변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전염병이 쉽게 퍼지고, 특히 어린이들이 건강 문제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아프리카, 인도, 아시아 지역의 도심에서도 노상 방뇨가 일상화되어 있다. 지난해 인도를 여행하던 중, 철도 주변에서 많은 주민들이 쪼그리고 앉아 배설하는 광경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는 단순한 생활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위생 시설이 부족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선배 세대가 이룬 발전을 당연하게 여기기보다 감사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화장실 문화도 함께 발전시켰다. 이제는 우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열악한 환경에 처한 국가들에게 도움을 줄 방법을 개발할 수 있다. 이는 K-화장실 시스템을 한류 산업의 한 분야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첨단시설 화장실을 보급하고, 위생 교육을 지원하는 등의 방식이 될 수 있다.

화장실은 단순한 위생 시설을 넘어 한 나라의 발전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다. 깨끗하고 편리한 화장실은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필수 요소이며, 나아가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반영한다. 이제 한국이 이룬 성공 모델을 바탕으로, 세계 위생 환경 개선 사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모색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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