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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손주와의 데이트

특별한 작은 행복

by 영 Young

나는 요즘 사랑에 빠졌다. 하루 종일 함께하고도 부족하다. 헤어지고 나면 한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가 보고 싶어진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는 설렘이 가득하고, 그를 바라보는 순간 가슴이 뛰며 행복감이 온몸을 감싼다.


주말이면 우리는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가 나의 팔베개에 누우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시간이 흐른다.

그가 내 품에서 곤히 잠들면, 숨소리마저 사랑스럽다. 하루를 마무리할 때도 아이는 내 곁에 있다. 잠들기 전, 휴대폰을 열어 그의 영상을 보고 미소 짓는다. 그렇게 그를 생각하며 꿈속으로 빠져든다.

그는 솜사탕 같은 양볼을 가진, 이제 갓 세 살이 된 나의 손주다.


애기와의 데이트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다. 그가 나를 발견하고 두 팔을 벌려 달려오는 순간, 세상의 모든 행복이 나의 가슴에 안긴다. 작은 손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해맑게 웃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따뜻한 감정이 차오른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마치 달콤한 솜사탕을 한입 베어 문 듯 부드럽고 행복하다.


나는 결혼 전, 아내와의 데이트에서도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물론 그때도 사랑했고, 설렜고, 행복했다. 하지만 손주와 함께하는 순간들은 또 다른 차원의 감동을 선사한다. 손주가 내 품에 안겨 까르르 웃을 때면, 시간이 멈춘 듯하다. 아들이 어릴 적에도 물론 기쁨이 있었지만, 그때는 책임감과 의무가 커 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온전히 사랑하고, 온전히 사랑받는 시간이다.


그의 작은 손이 내 손을 꼭 잡고, 발을 동동 구르며 “할아버지, 어부바!”하며 업어 달라고 외칠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그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된다. 그가 있는 곳에는 늘 웃음이 피어난다. 그의 재롱 하나에 온 가족이 환하게 웃고, 그의 작은 말 한마디에도 따뜻한 정이 흐른다.


아침이 되면 나는 손주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진다. 그가 방문을 열고 “할아버지!” 하고 달려오면, 기분 좋은 하루가 시작된다. 손을 맞잡고 걸을 때면,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을 잡았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인생의 순환 속에서 나는 또다시 새로운 사랑을 배우고 있다.


손주는 작은 것에도 감탄하며 세상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나뭇잎 하나가 바람에 흩날려도, 작은 개미 한 마리가 길을 지나가도 그는 감탄을 한다. 그런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나 또한 세상을 새롭게 보는 기분이 든다. 그와 함께하는 산책은 단순한 걷기가 아니다. 그는 길가의 돌멩이를 주워 들고 나에게 보여주며 “할아버지, 이거 봐!” 하고 신이 난다. 그럴 때면 나는 돌멩이 하나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세상의 작은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우리는 함께 공원을 걷고,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때로는 손을 잡고 시장을 보러 가기도 한다. 시장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붕어빵이다. 갓 구워져 나온 따끈한 붕어빵을 손에 쥐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내 마음도 따뜻해진다. 붕어빵을 한입 베어 문 뒤에는 꼭 나에게도 한 입 먹으라고 내민다. 그렇게 작은 것에서도 나누는 법을 배우는 아이를 보며, 나는 삶의 소중한 가치를 다시금 깨닫는다.


비 오는 날, 창밖을 보며 빗방울 떨어지는 모습을 신기해하는 애를 보며 나는 어릴 적 나의 모습을 떠올린다. 어렸을 때는 나도 저렇게 빗방울 하나에도 감탄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일상에 무뎌지고, 감동하는 일이 줄어들었지만 애와 함께하는 시간은 다시금 나를 동심으로 돌아가게 한다.


밤이 되면 녀석은 내 옆에 찰싹 붙어 앉아 동화를 읽어달라고 조른다. 책장을 넘기며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는 눈을 반짝이며 듣는다. 때로는 이야기에 빠져들어 “할아버지, 저기 공룡이 진짜 있어?”라고 묻는다. 나는 웃으며 “할아버지도 어릴 땐 공룡이 정말 있을 줄 알았단다.”라고 대답해 준다. 그러면 그는 깔깔 웃으며 내 품에 안긴다.


그가 잠든 후에도 나는 한참 동안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조그마한 손, 앙증맞은 코, 가늘게 떨리는 속눈썹까지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 세상에 이렇게 사랑스러운 존재가 또 있을까? 나는 애를 보며 생각한다. 나의 젊은 시절, 아들과 함께했던 순간들도 행복했지만, 손자와 함께하는 지금은 또 다른 차원의 행복이다.


나는 매일매일 새로운 사랑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손주는 내 삶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존재,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의 비타민이다. 그와 함께하는 데이트는 내 인생에서 가장 달콤한 시간이다. 그의 작은 손을 잡고 걸어가는 이 시간이, 언젠가 그에게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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