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양통신 10

by 김치호

찻잎을 땄습니다


청명한 기운으로 가득한 하늘 속의 형제봉은 푸르름을 더하고, 연두로 가는 초목의 행진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연두는 초목이 빚어내는 생명의 색이자 빛입니다. 그 연둣빛 신록의 계절을 맞아 지금 저의 시선은 오롯이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녹차나무의 새순에 꽂혀 있습니다.


녹차의 본향 하동에서는 곡우(穀雨)를 일주일 남짓 앞둔 4월 중순 무렵 찻잎 따기가 시작됩니다. 봄의 정령이 새벽이슬 머금으러 연둣빛 녹찻잎에 내려앉는다는 그 계절이 바로 지금입니다.


녹차(작설차)는 곡우 전후에 딴 첫물차를 우전(雨前)이라 부르고, 뒤이어 대략 열흘 간격으로 딴 잎으로 만드는 차를 각각 세작(細雀), 중작(中雀), 대작(大雀)으로 구분합니다. 흔히들 녹차 하면 우전(雨前)을 최고로 치지요. 그러한 평가는 겨울을 이기고 돋아난 새순을 따 만든 첫물차를 마시며 그 기운을 빨리 맞이하고 싶은 조바심으로 윤색된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향은 좋지만 맛이 깊지 못하다는 의견도 있고요. 정말로 녹차를 사랑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그보다 조금 늦은 5월 초 찻잎 차를 더 높게 치는 사람이 많습니다.


집 주변에는 제법 너른 녹차밭이 있습니다. 한 300평? 남짓 될까요. 처음 땅을 보러 왔을 때 가장 먼저 눈이 꽂힌 곳이기도 한데요. 여러 해 동안 가꾸지 않아 지금은 아주 야생으로 돌아간 차밭입니다. 차나무 키의 높낮이는 물론이고 자라는 곳도 자세도 제멋대로여서 언뜻 보면 키 작은 관목들이 무성한 야산 언덕배기 같아 보입니다.


이런저런 모임과 행사로 번다한 5월 초, 그 속진(俗塵)을 멀리한 체 차밭에서 찻잎을 땁니다. 몇 년 전에 스님 따라 찻잎 따고 덖어 차를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익숙지 않는 손놀림이라 꼬박 이틀을 땄는데도 1.5kg이 조금 더 될 뿐입니다.


차 명인 스님의 레시피를 따라 찻잎을 이틀 정도 그늘에서 시들킨 다음 진이 나올 정도로 치대고 비비고 유념하여 발효과정을 거칩니다. 그런 뒤 온열판이 설치되어 있는 컨테이너 바닥에 널어 하룻밤 동안 바싹거릴 정도로 말리면 차 만들기가 끝나는데요. 발효 시간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맛도 향도 달라지게 됩니다.


초파일이 가까워 등도 달 겸 절에 가 스님께 품평을 청하니 덕담인지 격려 차원인지 아무튼 훌륭하다면서 숙성을 시키면 맛이 더 좋아질 거라고 하시는군요.


오늘은 한국전력 위탁업체에서 전신주 2개를 박고 전선을 연결하고 갔습니다. 이제 계량기만 달면 전기 인입 작업이 끝납니다.


오후에는 건축설계사가 방문하여 준공 신청 서류에 첨부한다며 건물 내외부 이곳저곳의 사진을 찍은 뒤 건물 번호판을 달아주고 갔습니다. 입석길 90-***. 앞으로 이 주소로 사람들이 찾아오고 편지와 택배가 배달될 것입니다. 집주인 이름보다 더 익숙한 식별번호가 하나 더 추가되는 것이지요. 인터넷 검색창에도 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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