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양통신 9

by 김치호

봄기운 맞으며 텃밭을 일구었습니다


봄비 속에 벚꽃이 지고 있습니다.


화창한 봄날에는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는 게 벚꽃이라 했던가요.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만개해 있던 벚꽃이 오늘은 꽃비 되어 내립니다. 그 장면이 장관이긴 하나 결코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는 비장(悲壯)함이 서려있습니다.


벚꽃이 쿨하게 퇴장하면 감나무에 새잎이 돋아납니다. 오늘처럼 봄비 내리는 날, 한껏 물기 머금은 가지마다 돋아나는 감잎 새순에는 생명의 에너지가 넘쳐흐릅니다. 바야흐로 신록의 연둣빛 향연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연둣빛 봄기운이 어찌 이뿐일까요. 저 멀리 올려다 보이는 형제봉 산색도 악양 들판도 봄빛이 짙었고 겨우내 시들어 있던 계곡 가 대나무 숲도 생기를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어제는 땅에서 솟아나는 봄기운을 온몸으로 맞으며 텃밭을 일구었습니다. 호박 구덩이도 서너 개 팠습니다. 만물이 소생하고 생동하는 계절, 이 화창한 봄날에 어떻게 얼마간의 땀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봄이 되니 집 짓는 일도 속도를 내며 마지막 피치를 올리고 있습니다. 화장실 세면대 변기를 설치하고 정화조를 묻었습니다. 지하수를 집안으로 끌어들이고 보일러도 설치했습니다. 어제는 도배하고 오늘 바닥에 강마루 깔았더니 집안이 한결 사람 사는 공간 같아 보입니다. 이제 전원 콘센트를 설치하고 배전함 만들어 전기를 끌어들이면 집안에서 물 전기 공급과 난방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집 짓느라 세상일에 대충 담을 쌓고 지낸 지 반년이 넘었습니다. 그래도 어쩌다가 세상으로 뚫린 창을 들여다볼 때면 많이 답답하고 걱정스럽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혼탁해지고 있는 정치판이야 주기적으로 있어왔던 일이니 어느 정도 감내가 되지만, 코로나 상황은 누진확진자가 어느새 10만 명을 넘어섰고 하루 확진자도 5~6백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백신 소식은 감감하고 조심하는 것 외 딱히 방법이 없으니....


가까운 친구가 그 환란(?)의 도시를 탈출하여 농가창고로 지어놓은 컨테이너에서 며칠 쉬어가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습니다. 지을 때는 애물단지 같았던 컨테이너가 코로나 시대에 피난처가 될 줄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함께 칡덩굴과 가시덤불로 뒤덮인 녹차밭과 매실밭을 정리하며 땀 흘리고 형제봉도 올라보자고 약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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