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는 바야흐로 절정으로 치닫고
우수 경칩 지나고 춘분이 머잖은 3월 중순. 악양은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며칠 전에 비가 제법 넉넉하게 내린 덕분인지 계곡 물소리가 한층 낭랑해진 듯하고요. 돋아나는 풀색도 하루가 다르게 연둣빛으로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매화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공사 현장 주변에는 매실나무가 많습니다. 지금 집이 지어지고 있는 땅은 원래 매실밭이었는데요. 처음 이곳 땅을 보러 왔을 당시 매실나무들은 여러 해 동안 전혀 관리되지 않아 야생으로 돌아간 상태였습니다. 가지치기를 하지 않은 탓에 가지는 제멋대로 뻗어 있었고 칡덩굴과 잡초가 뒤엉켜 어지러웠습니다. 그 가지가지마다 지금 흐드러지게 매화가 피고 있습니다. 뿜어 나는 매향에다 꿀 따는 벌떼의 웅웅 거리는 소리가 더해져 정신이 황홀하다 못해 어질어질해집니다. 집 짓는 일을 응원할 겸 봄맞이 남도순례차 악양에 들린 지인이 이 광경을 보더니 저처럼 밀도 높게 만발한 매화는 처음 본다며 한 동안 말을 잊더군요.
집 짓는 일은 여전히 더디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가니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집 모양이 눈에 들어오는군요. 베란다 방수 페인팅 작업, 화장실과 부엌벽에 타일 붙이는 작업이 끝났고, 내부 인테리어와 목공작업도 거의 마무리되었습니다.
간밤에는 시공사가 부도나 현장에 쌓아놓은 자재를 차압해 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공사가 제대로 진척되지 않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꿈속에서 시공사 부도라는 최악의 상황을 연출한 것일까요? 개꿈이길 바라지만 솔직히 마음이 불편한 것도 사실입니다.
집 공사와는 달리 물 공급을 위한 지하수 관정 작업은 순조롭게 끝났습니다. 이곳은 마을 상수도 취수장이 바로 위에 있을 정도로 청정지역이니 계곡물을 끌어다 먹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지하수 파는 작업에 앞서 생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위쪽으로 매실 감나무 과수원이 몇 필지 있는 데다 집도 두어 채 있어 언젠가는 지하수를 파야할 것이고 그럴 바에야 지금 파자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이지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갔지만 바위를 뚫고 쏟아져 나오는 시원한 물맛이 참 좋습니다.
그나저나 집 짓는 일로 쌓인 스트레스도 풀 겸 조만간 형제봉에 한번 올라야겠습니다. <악양통신> 쓰면서 곳곳에서 형제봉을 언급했음에도 여지껏 제대로 그 속살을 느껴보지 못한 저도 그저 무심한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집 짓는 현장에서 올려다 보이는 형제봉은 악양의 진산(鎭山)이란 이름에 걸맞게 악양 고을을 진호(鎭護)하는 장중한 존재감이 느껴집니다. 지금 지어지고 있는 집이 형제봉의 그 기운을 얼마간이라도 나누어 받을 것이라 생각하면 그냥 기분이 좋습니다. 그곳에 오르면 남쪽으로 악양 들판과 섬진강, 저 멀리 남해 다도해가 펼쳐지고 북으로는 지리산 연봉이 줄기줄기 이어진다는데...., 그 풍광을 상상해 보는 것도 가슴 설레는 일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