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양통신 16

by 김치호

텃밭농사, 들깨를 털었더니 한 되쯤 됩니다


가을이 깊어가니 텃밭 작물도 조금씩 마감할 때가 다가옵니다.


귀촌생활이 주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텃밭 가꾸기일 텐데요. 땀 흘리며 땅을 일구고 작물을 키우는 일은 식자재의 자급 차원을 넘어 자연 생태와 생명의 순환 질서를 이해하는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그 의미를 화두 삼아 봄부터 텃밭을 일구고 적지 않는 작물들을 키워왔습니다. 흔히들 텃밭에 많이 심는 작물이 대부분이지만, 올해는 이곳에 집 짓고 살기 시작한 첫해여서 경험 삼아 시험적으로 심어본 것도 더러 있습니다.


4월 중순 무렵, 매실밭의 늙은 매실나무를 두어 그루 베어낸 자리에다 스무 평 남짓 텃밭을 만들고 상추 열무 쑥갓 토마토 오이 고추 가지 들깨 아욱 근대 당근 여주 등 생각나는 대로 다 심었습니다. 멀칭(mulching)은 하지 않았고요. 여러 해 동안 매실나무 잎이 떨어지고 쌓여 썩은 땅은 기름져 보였고 그래서 그런지 거름을 안 했는데도 작황이 아주 좋았습니다. 특히 토마토와 고추 가지 들깨가 잘 자랐고, 물론 당근 케일처럼 잘 안된 것도 있었습니다. 제때 물을 주지 않아 오이 등은 절반 가량 말라죽었고요.


식구가 단출하다 보니 부지런히 식탁에 올리고 오는 사람마다 챙겨주는데도 그냥 밭에서 버려지는 것이 많았습니다. 장마철과 뒤이은 폭염으로 상추 근대 아욱 쑥갓은 녹아지거나 대궁이 올라오면서 끝을 보았고요. 그 자리에 가을 무 배추 씨앗을 넣었습니다.


아 옥수수와 고구마도 심었군요. 멧돼지가 하루 밤 사이에 그 옥수수와 고구마밭을 초토화시켰다는 얘기는 얼마 전에 했었지요?


며칠 전 들깻대를 베어 말려놓았다가 털었더니 한 되 정도 됩니다. 공사 때 썼던 방수포가 있어 깔고 말려 털었는데요, 이것도 가을걷이라면 가을걷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지금 텃밭에 남아 있는 것은 무와 배추뿐입니다. 곧 추위가 닥칩니다. 여기는 산자락인 데다 계곡바람이 차가워 추위가 더 빨리 오지요. 추위가 닥치기 전에 어린 시절 시골에서 어른들이 구덩이를 파고 무 배추를 묻어두던 장면을 기억해서 그렇게 해볼까 생각 중입니다만....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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