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는 어찌 되었을까요?
병원 갈 일이 있어 한 보름 가까이 집을 비웠습니다.
특별히 챙겨야 할 일이 없음에도 운전하는 데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가 되자마자 바로 악양으로 내려왔습니다. 악양에 집 지어 생활한 지 반년이 채 안 되었을 뿐인데 이곳이 마치 오래된 인연처처럼 편안함이 느껴지니.... 아무튼 나는 이곳의 풍광과 새 거처에 단단히 몰입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집에 오니 모든 게 익숙한 듯 자연스럽습니다. 텃밭 작물의 생기도 여전하고요. 창가에 거미들이 몇 마리 줄을 치고 있을 뿐. 그러나 한 가지 뭔가 허전함이 있었습니다. 마루가 마중을 나오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마루’는 집에서 300m가량 산 쪽으로 올라가는 외딴집의 노부부가 기르는 개 두 마리를 구분하지 않고 부르는 이름입니다. 두 녀석은 늘 일심동체로 움직이는 터라 굳이 이름 구분하여 부를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마루와의 인연은 이곳에 집짓기 시작할 무렵 시작되었습니다. 가끔 주변 풍광을 보러 노부부가 사는 산 쪽으로 산책 삼아 올라가다 보면 어김없이 두 녀석이 심하게 짖어대며 경계를 하곤 했었지요. 그렇게 심하게 낯을 가리던 녀석들도 가끔 비스킷 등 군것질거리를 준비하여 다가가 소통을 청하자 조금씩 마음을 열었고 마침내 우리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마루는 목줄도 없이 주변을 돌아다니는, 누가 보면 유기견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행색이었고 행동반경도 2km는 넉넉히 되는 듯했습니다. 노부부는 연로하셔서 거동이나 타인과의 언어 소통에도 얼마간 어려움이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먹이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듯했고 녀석들은 주변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며 배고픔을 해결하는 모양새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나를 만났고 가끔 먹을거리를 챙겨주는 나에게 마음을 주기 시작했던 것은 아닐까요? 내가 여기 있을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내려와 몸을 부딪고 킹킹거리며 사랑을 표시하곤 했습니다. 집안에 있으면 창가로 다가와 문안인사를 했고요.
그런 녀석들이 내가 보름 가까이 출타했다가 돌아왔는데도 코빼기를 보이지 않으니.... 괘씸한 생각이 들어 대충 짐 정리와 집 청소를 끝내자마자 올라갔습니다. 노부부의 집은 비어있었고 마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두 분이 출타하실 때 데리고 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마루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인근에 사는 마을 분을 만났을 때 마루가 안 보인다고 했더니, 할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셔서 중환자실에 계시고 할머니는 병수발을 들어야 하는 형편이라.... 개장수를 불러 팔아버렸다고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며칠째 횅한 마음을 추스르느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지금 마루는 어찌 되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