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양통신 20

by 김치호

죽순을 캤습니다


지금 남녘 지방은 여지껏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봄가뭄이 오래가고 있습니다.


반년 넘게 비다운 비가 한 번도 오지 않았으니.... 섬 지역에서 식수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은 한참 전에 듣긴 했지만, 계곡물을 모아 식수와 생활용수로 쓰고 있는 아랫동네에서도 오늘부터 제한 급수를 시작한다는 마을 방송이 바람에 실려 흩어지고 있습니다. 사람 마시는 물도 부족할 정도니 농작물의 생육 또한 부진할 수밖에 없고 그 현장을 바라보는 농부들의 시름도 깊어갑니다.


귀촌 2년 차 백면서생이 어찌 농부들의 그 시름을 십분의 일이라도 헤아리겠습니까만, 그래도 명색이 농업경영체, 임업경영체로 등록된 어엿한(?) 전업 농부 아닌가요? 2월에 심은 대봉감나무 묘목들의 발육 상태가 영 시원찮은 데다 텃밭 작물마저 고사 직전이라 제 마음도 편치 않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찻잎 따기가 끝날 무렵이면 대밭에 죽순이 올라옵니다. 벌써 올라왔어야 할 죽순이 올해는 극심한 봄가뭄 탓인지 이제서야 삐죽삐죽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군요. 비가 안 오니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는 말도 조금은 낯선 듯하고요. 그래도 조만간 비가 한번 넉넉히 내려주면 우후죽순이 연출될 것입니다. 비 내린 뒤 대밭에 나가보면 아침이 다르고 점심때가 다를 정도로 죽순은 쑥쑥 자랍니다. 하루에 2m 자라는 것도 있다고 하니 그 속도가 가늠이 되시나요?


어제 오후 집 옆의 대밭에서 죽순을 캤습니다. 죽순은 발로 툭 차면 꺾어지니 '캔다'는 표현이 맞지 않는 듯합니다만, 그렇다고 '꺾다'란 표현은 더 거시기하고.... 괭이로 땅속 부분까지 캐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캔다는 말이 맞는 거지요?


멧돼지가 한번 훑고 갔는지 대밭 이곳저곳에 흙이 패여 있고 죽순 껍질이 어지러이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그 사이사이에 녀석들이 남겨놓은 것이 있어 얼마간의 죽순을 감사히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 집에는 큰 가마솥이 없어 원각사에 싣고 가서 2시간가량 푹 삶았는데요. 죽순 삶는 냄새가 향긋하고 구수했습니다. 그렇게 삶아진 죽순은 껍질을 벗긴 뒤 큰 다라에 물을 채운 뒤 밤새 담궈 둡니다. 그래야 죽순의 아린 맛이 없어진답니다.


가마솥 아궁이 앞에 앉아 불 때고 있을 때 주지스님이 지나가시다가, "죽순 첫 수확 기념으로 죽순 넣고 돼지고기 볶아 곡차 한잔 합시다~" 농을 던지시더군요. 스님 농이 없었더라도 아삭아삭 하는 죽순 안주에 막걸리 한잔 할 생각은 진작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어 물에 담궈두었던 죽순을 건져 일부는 팩에 담아 얼리고 또 일부는 찢어 말리고 있습니다. 꾸둑꾸둑하게 말리면 부피도 줄고 보관도 좀 용이하겠지요? 원각사 공양주 보살의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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