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잎을 시들키고 있습니다
어느덧 신록의 계절 5월입니다.
봄은 잠자는 대지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고 만물을 소생시킵니다. 메마른 땅에 풀꽃이 피어나고 맨몸이던 나무 가지에 새순이 돋습니다. 그리하여 5월의 산과 들은 그 싱그러운 생명들의 숨소리로 가득하고 하루하루 연두에서 초록으로 짙어갑니다.
오늘은 해 나고 적당히 바람 불어 찻잎 시들키기 좋은 날. 어제 그제 딴 찻잎을 거실 바닥에 펼쳐 널었습니다. 곡우 때 첫물 찻잎을 따 얼마간 차를 만든 데 이어 두 번째인데요. 풋풋하면서도 살짝 비릿한 찻잎 냄새가 집안을 채우고 흘러넘칩니다.
4월 하순에 따는 찻잎은 불규칙하게 자란 야생 차나무의 참새 혓바닥만 한 어린 새순이다 보니 채엽량은 늘 들쭉날쭉입니다. 이번에는 곡우 무렵보다 새순이 조금 더 자란 듯하여 양이 좀 될까 했는데 펼쳐놓고 보니 조금밖에 안 됩니다. 따는 사람의 둔한 손놀림 때문이겠지만, 겨울 가뭄이 봄까지 이어지면서 찻잎의 생육이 부진했던 탓도 있겠지요. 어쨌든 저 상태로 이틀 남짓 시들킨 뒤 찐득한 진이 나올 때까지 손으로 치대고 비빈 뒤 발효 과정을 거칠 것입니다. 차 명인 스님의 지도를 받은 데에다 저의 정성을 더하고 있으나.... 맛과 향이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
찻잎을 따고 차를 만들면서도 한편으로 우리 녹차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을 떠올릴 때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집니다. 일견 녹차가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일상의 기호음료로 다가오는 듯해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마음이 마냥 편치만은 않다는 얘기입니다. 값싼 중국차에 치이고 커피에 밀려 우리 녹차는 점점 자리를 잃어가는 중입니다. 절집 선방에도 빠짐없이 커피 내리는 기계가 갖추어져 있고, 젊은 사람도 나이 든 사람도 커피 쪽으로 쏠리고 있습니다. 거스를 수 없는 입맛의 흐름인지 모르겠으나 이러다 보면 얼마 안 있어 우리 녹차는 다중의 일상에서 멀어지고 소수의 호사가들이 즐기는 고급한(?) ‘음다(飮茶)문화’로만 존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쉬운 대로 소규모 다원이나 절집에서는 여전히 모든 과정을 사람의 손으로 하는 제다 전통을 이어가고 있고 또 일각에서 기계화, 특화를 통해 시대 입맛에 맞게 녹찻잎을 이용한 식음료 개발에 힘쓰고 있으나 상황은 녹녹치 않은 듯합니다.
전통방식 따라 직접 차를 만들어보면 그 과정의 수고로움을 절감합니다. 찻잎 따는 일부터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습니다. 각 단계마다 적지 않은 시간과 정성, 공력을 쏟아야 합니다. 저의 실력으로는 하루 5~6시간 부지런히 잎을 따면 1.5kg쯤 되고, 그것을 차로 만들면 300g가량 됩니다. 시중에 나오는 야생이 아닌 재배 녹차 상품(上品) 40g 포장이 5만(?) 원 정도일 텐데요. 종일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 불규칙하게 자생하는 차나무의 새순을 하나하나씩 따서 시들키고 또 그것을 정성을 다해 발효시키거나 덖고 비비는 노고를 생각하면 할 일이 못됩니다. 노는 입에 염불하듯, 쉬엄쉬엄, 놀이 삼아, 마음 수행한다 생각하고 하는 것이겠지요.
그처럼 차 만드는 과정은 만만치 않지만, 반짝이는 연둣빛 찻잎 새순을 바라보는 순간 그 힘듦과 잡념이 다 사라집니다. 새순을 딸 때 똑 똑 손끝에 전해지는 조용하면서도 맑은 소리는 세상 시름을 잊게 하는 치유의 울림입니다. 녹차 한 모금 머금을 때 혀와 입안에 와닿는 배릿함은 원초적인 자연의 맛이자 향기가 아닐는지요?
녹차 한 잔 앞에 놓고 그 빛깔과 소리, 맛, 향기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