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양통신 23

by 김치호

상반기를 되돌아봅니다


세월은 유수 같아 새해가 시작된 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7월 하고도 중순입니다.


악양 생활도 점차 자리를 잡아가면서 주변의 풀과 나무가 나고 자라는 모습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고 일거리를 챙겨보는 여유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부분이 생소하고 새롭게 다가옵니다. 나이 들어 귀촌한 사람에게 시골 생활은 딱히 할 일이 많은 것은 아니더라도, 눈여겨 찾아보면 곳곳에 일이 늘려있고 때로는 감당이 안 될 때도 있습니다. 정착 초기라 더 그렇겠지요. 겸사해서 상반기를 되돌아봅니다.


연초에 장비(포클레인)를 불러 대봉감 묘목을 심을 땅 고르기 작업을 했습니다. 집 옆으로 계곡을 따라 칡덩굴, 돌과 바위로 뒤덮인 얼마간의 버려진 땅이 있는데요. 지난해부터 저 땅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마침내 이곳 악양의 특산물인 대봉감 묘목을 심기로 한 결심을 실천에 옮긴 것이지요. 어느 지인은 야생화 씨를 뿌려 두면 어떻겠느냐고 했고, 아랫마을에 사는 농부 이 씨는 감 농사 만만치 않으니 그냥 편하게 하동장에 나가 사다 먹으라고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감나무 묘목을 심겠다고 결심한 바탕에는, 유실수는 일단 심어놓으면 설사 내가 못 따먹더라도 후세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는 따먹을 것이라는 소 박힌 기대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존재케 했던 이 세상에 남기는 감사의 정표라는 생각도 해보았고요. 30층짜리 아파트는 3년이면 짓지만 유실수 묘목은 4~5년이 지나야 비로소 소량의 수확이 가능하니, 인간의 시간과 자연의 시간은 본질적으로 그 결이 다르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대봉감은 3.5m~4.0m 간격으로 50주를 심었고, 추가로 체리 자두 살구 무화과 호두를 2~5주씩 심었습니다. 비교적 병충해를 덜 타는 것들입니다. 혹독했던 봄 가뭄을 넘기느라 틈나는 대로 물을 열심히 주었음에도 5주가량 말라죽었고, 묘목값이 비쌌던 호두와 피칸은 일곱 주 가운데 현재 세 그루가 살아남았습니다.


사람들은 집을 짓고 나면 이런저런 꽃나무와 화초를 심고 조경을 하지요. 하지만 이곳은 주변이 매실나무, 녹차밭, 감나무, 대나무숲으로 어우러져 그 자체로 훌륭한 조경을 이루고 있는 데다 그러한 환경이 시간이 흐르면서 집과 어우러지고 보완되어 자연스러운 전원조경으로 완성될 수도 있겠다 싶어 인공적인 손길은 최소한에 그쳤습니다. 다만 늦봄부터 초가을까지 집 주변에 무성하게 자라나는 풀만은 관리해야겠다 싶어 마당에 잔디를 깔았고, 겸해서 동백과 홍매 석류 한두 그루씩 심었습니다. 함께 심고 싶었던 배롱나무는 시장에 나온 것이 없어 내년으로 넘겨졌고요.


텃밭 농사는 지난해 경험을 참고하여 토마토 고추 오이 상추 등 이것저것 넉넉히 심었습니다. 옥수수와 고구마는 지난해 멧돼지가 하루 밤 사이에 초토화시켰던 터라 심지 않았고요. 취나물은 씨를 사다가 많이 뿌렸는데 싹 올라오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가뭄 탓일까요? 더덕도 지난해에 씨를 한 봉지나 뿌렸음에도 발아가 안 된 건지 주변 잡풀 기운에 눌려선지 전혀 찾아볼 수 없어 올해는 새끼손가락만 한 1년생 뿌리를 사다 이곳저곳에 심었습니다. 지금껏 잘 자라고 있으니 3년 정도 지나면 식탁에서 더덕향을 맡을 수 있겠지요.


4월 하순부터 5월 초에는 녹찻잎을 따서 차를 만들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과 차담(茶談)을 나눌 정도는 됩니다.


6월 들어서는 매실청을 담궜고 죽순도 두어 번 수확했습니다. 죽순은 멧돼지가 자주 다녀가는 바람에 수확이 지난해보다 못했습니다. 그래도 원각사 공양간에도 가져다 드리고 얼마간은 팩에 담아 냉동칸에 넣어 얼렸습니다.


7월 들어 장마가 시작되면서 풀과의 전쟁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무성해지는 집 주변의 초록 풀밭이 시원해 보이기도 합니다만, 마냥 그대로 둘 수도 없는 터라 저의 수심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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