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양통신 22

by 김치호

초등학교 동기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오늘도 많이 무더울 모양입니다.


그저께 초등학교 동기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6.25 전란이 끝나고 베이비붐이 막 시작되던 무렵 태어난 우리는 1961년에 초등학교(아직도 ‘국민학교’가 입에 익어서 그렇게 쓰겠습니다.)에 들어가 67년에 졸업했으니 올해가 졸업한 지 55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가 다닌 학교는 밀양 하남들 언저리에 자리한 ‘하남대사국민학교’입니다. 밀양군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1922년 개교) 유서 깊은 학교였습니다만, 몇 년 전, 인근 읍내 학교에 합쳐지면서 폐교되었습니다. 농촌지역의 취학인구 급감과 그에 따른 초등학교 폐교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님에도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유소년기의 추억 공간이 뭉툭 잘려나가는 듯하여 많이 아쉬워했던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


모임은 밀양 얼음골 어귀에 있는 펜션에서 10시 무렵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60명이 더 되는 동기들이 참석했습니다. (저는 하동역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가다 삼랑진역에서 환승하고, 밀양역에 내린 후 친구의 승용차 도움을 받아 모임 장소에 갔습니다.) 졸업 인원이 130여 명이었고 타계한 동기들이 25명 정도 되는 데다 평균 나이가 69세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참석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졸업 후 처음 보는 얼굴도 몇 있었습니다.


55년 만의 만남! 그 감동을 어떻게 표현할까요? 인사하고 껴안는 것도 잠시 이내 그 옛 시절로 돌아가 떠들고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다행히 걱정하던 비는 오지 않았으나 날씨는 찌는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풀이라도 하듯 열심히 떠들고 춤추고 노는 친구들의 신명(?) 들린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무릎이 시원찮은 저를 강제로 춤판으로 이끄는 손길이 오히려 고마웠고요.


한편에서는 삼삼오오 모여 그 시절 그때 이야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시작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간간이 섞여있는 친구들의 고단했던 인생살이가 저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지금도 상당수 동기들은 농사를 짓거나 택시 운전을 하고 요양보호사로, 또는 식당을 하는 등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생업 현장을 지키고 있다고 했습니다. 요행히 어찌어찌하여 가방끈이 길어졌고 거기서 얻은 어쭙잖은 지식으로 지금껏 살아온 나 자신이 왜소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의 평균 ‘건강 수명’이 75세 정도라고 하지요. 우리 동기들이 병원이나 남 도움 없이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대략 5년 남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때까지만이라도 다들 열심히 건강하게 살아서 유소년기의 추억과 감성을 되새기며 웃고 떠들고, 춤추고 노래하는 어울림이 이어지길 빌었습니다.


신명풀이 자리는 6시 무렵 끝났습니다. 기약도 없이 언젠가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길 빌며 우리는 헤어져야 했습니다. 아쉬움과 다음 만남의 기원을 담아 헤어지며 손을 흔드는 순간 울컥해지며 뜬금없이 오래전에 참관했던 일본 미야자키현 난고촌(南鄕村) 백제마쓰리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백제마쓰리는 한반도에서 건너온 백제유민들이 음력 12월 중순 미카도신사(神門神社)에 모여 지내던 제례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는 유서 깊은 마쓰리입니다. 여러 의식이 이어지며 9박 10일간 계속되는 마쓰리는 “사라바(さらぱ)!!” 하고 외치며 이별하는 장면에서 끝납니다. ‘사라바’는 “살아서 다시 보자”는 애절한 이별사입니다. 우리 헤어짐이 그처럼 애절한 분위기일 수는 없겠으나, “또 만날 때까지 건강해라”는 친구들의 말이 내 귀에는 꼭 “사라바!”의 그 느낌으로 들렸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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