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양통신 24

by 김치호

벌떼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장마가 끝나자 찜통더위가 예보되고 있습니다.


한줄기 소나기가 간절한 오후, 창밖으로 시간이 멈춘 듯 따가운 햇살아래 대나무들은 오수에 빠져들었고 왁자지껄하던 산비둘기 떼도 기척이 없습니다. 저 멀리 구재봉에 걸린 구름띠를 바라보며 차 한 잔에 마음의 여유를 담아봅니다.


어제는 날씨가 흐린 데다 조금은 선선하기까지 하여 이때다 하고 예초기를 매고 미뤄왔던 풀베기를 시작했습니다.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더 있는지 주위에서도 드문드문 예초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예초기는 무게도 있는 데다 안전을 위해 정강이와 무릎, 안면 보호대를 착용해야 하니 육체적인 부담은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적지 않은 압박감을 줍니다. 그 압박감을 떨쳐낸다 하더라도 엔진의 강약을 조절하고, 지면과 날 간격을 알맞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체력과 집중력이 요구되는데요. 초보 농군에겐 결코 만만치 않은 사항들입니다.


예초기가 익숙지 않은 저에게 풀베기는 분명 부담스러운 작업입니다. 그럼에도 그 일을 마다할 수 없는 것은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는 삶은 이곳으로 귀촌하면서 서원(誓願)한 바이기도 하고, 풀 벨 때 코끝에 와닿는 냄새가 너무나 유혹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비릿하면서도 싱그러운 냄새는 소꼴 베던 유년의 초동(草童)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각성제입니다. 아련한 그 시절에 체화(體化)된 후각은 지금껏 남아 그때를 생생히 기억하니, 유년의 감각은 이다지도 끈질긴 것인가요?


한 가지 예기치 않았던 사건도 있었습니다. 한참 풀 베던 중 뜨끔한 통증이 있어 뭔가 하고 주위를 살펴보니 벌떼가 달려들고 있는 게 아닙니까. 밭 가운데 어딘가에 있는 땅벌집을 건드린 모양이었습니다. 집 주변에는 매실 녹차 밤나무를 비롯해서 야생화가 지천이니 철 따라 꿀 따러 날아드는 벌떼는 익숙한 풍경임에도 정작 거기에 벌집이 있는 줄 몰랐던 것이지요. 바로 예초기 시동 끄고 작업을 중단한 뒤 집안에 들어와 살펴보니 목과 가슴 사이 벌에 쏘인 두어 군데 부위가 벌겋게 부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걱정이 좀 되긴 했으나 견딜만하여 상비용 물파스를 바르는 것으로 상황은 종료되었습니다.


한숨 돌린 뒤 생각하니 벌떼 소동으로 끝내지 못한 풀베기도 마음에 걸렸지만 그보다도 집 가까이 있는 벌집을 저대로 둘 수 없다는 판단에 평소 이런저런 일로 도움을 받아온 아랫마을 분에게 또 sos를 쳤습니다. 고맙게도 바로 올라와 보더니 벌집이 땅속에 있어 제거하기가 쉽지 않다며 119에 도움을 청하는 게 좋겠다고 하더군요.


이런 일로 국가기관에 도움을 청하는 게 합당한가 하는 생각에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습니다만, 별 뾰족한 대안도 없고 해서 119에 전화하여 상황 설명을 하니 곧 출동하겠다는 응답이 왔습니다. 15분이 채 안 되어 현장에 도착한 대원 세 분! 대한민국의 안전서비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분들은 곧바로 우주복 같은 방호장비를 착용하고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벌집이 땅속 바위틈 빈 공간에 있다면서 일단 팔을 집어넣어 벌떼와 벌집을 제거하는 데까지 제거하고 약을 뿌린 뒤 흙을 파서 벌 출입구를 봉쇄하는 것으로 작업을 끝냈습니다. 그러면서 3~4일은 절대로 근처에 가지 말고 (벌집 제거작업 당시 외출 나갔던 벌들이 돌아와 집 주위를 계속 맴돌 텐데, 이 녀석들은 약이 바짝 올라 있어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면서) 예의주시하다가 추가적인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를 하라고 하더군요.


또 한 가지 정말 안타까웠던 일은 풀을 베면서 초봄에 심고 긴 봄가뭄 때 물을 줘가며 보살펴온 대봉 감나무 묘목 두 그루를 예초기로 날려버린 것입니다. 묘목은 아직 어린 데다 무성한 풀 속에 잠겨 있어 식별이 쉽지 않은 점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제 주의력 부족이 사단의 빌미가 되어 벌어진 참사(?)였습니다. 너무 속 상하고 분하고 눈물이 나왔지만, 어쩌겠습니까. 이렇게 하나씩 배워가는 것이겠지요.


오늘만큼은 위로받고 싶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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