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양통신 25

by 김치호

형제봉 산색에도 가을빛이 묻어납니다


여름의 끝자락인데,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립니다.


대나무 숲은 자욱한 비안개에 묻혀 들고, ‘무죽(霧竹)의 미학‘이란 말이 연상되는 산촌의 고즈넉한 아침입니다.


새벽녘으로 살짝 선선함이 느껴지니 지금 오는 비는 한 걸음 늦은 가을의 전령사라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아니더라도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악양 들판과 뒤로 올려다보이는 형제봉 산색에는 이미 가을빛이 묻어나고 있습니다. 폭우 피해를 입으신 분들은 뜬금없이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나무랄 것 같습니다만, 아무튼 계절은 도둑처럼 온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계절의 변화는 집 주변에도 찾아들었습니다. 거실 앞의 백일홍은 때가 되었는지 윤기를 잃어가기 시작한 지 제법 되었고, 봉선화가 주렁주렁 씨주머니를 만들고 있고요. 밤송이도 클 대로 커졌습니다. 한여름 내내 왕성한 생명력을 뽐내던 계곡 가 칡덩굴과 풀도 살짝 누런 끼가 들면서 기운이 쇠하고 있는 모습이 저의 둔한 감각기관에도 뚜렷이 잡힙니다. 어제가 처서(處暑)였으니, 처서 지나면 풀이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 셈이지요.


이곳 명산물인 대봉감도 하루가 다르게 씨알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올해는 지난 2년 동안 부실했던 작황을 보상이라도 하듯 가지마다 휘어지게 달렸습니다. 급한 대로 대나무를 베어와 여기저기 늘어진 가지에 지지대를 만들어 받치고 나니 모양도 그럴듯하고 마음도 좀 놓입니다.


저 감들이 발갛게 익어 홍시로 혹은 곶감으로 식탁에 오르는 과정을 생각합니다. 자연의 순환질서, 그것과 함께하는 인간의 정성과 손길을 떠올립니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그 합일(合一)의 시공간에는 인간을 향한 자연의 보살핌이 있고, 자연을 향한 인간의 간절한 기도가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보는 순간 마음이 착 가라앉습니다. 시방 내리는 비는 백수 촌부의 시정(詩情)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그만일지 모르겠으나 농사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지금은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한창 씨알을 키우고 맛을 더해가야 할 때입니다. 거기다가 언제 닥칠지 모르는 태풍의 시샘도 받아넘겨야 하고.... 다 하늘의 일이니, 그렇게 되길 기도하고 기다리는 것이 농부의 마음입니다.

며칠 전에는 가을배추와 무 씨앗을 넣었습니다. 상추도 이때 씨 뿌려도 충분히 먹을 수 있다기에 함께 뿌렸습니다. 그간 비도 적당히 오고 해서 벌써 싹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는 작물의 생육 과정이 그저 그렇게 보이지만,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되는 것이 있을까요? 이름 모를 들꽃 한 송이가 피기 위해서도 하늘의 햇볕과 땅의 자양분, 시간이 필요하듯 이 모두가 자연의 한 부분이겠거니 생각하며 기다립니다. 그래도 이왕이면 잘 커줘서 씨앗값이라도 빠지면 더 좋겠지요?


예기치 않았던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119에서 거처를 방문하여 휴대용 소화기와 화재감지기를 가져다준 것입니다. “독거노인들의 화재 사고를 대비한 것”이라고 하면서요. 저야 집안에 갖추어져 있어 필요가 없다고 했으나, 나라에서 주는 것이니 받아놓으라고 하면서 인증사진을 찍고 돌아갔습니다. 여분으로 생긴 소화기를 바라보며 우리 사회의 재난안전망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지만, 다른 한편으로 제가 ‘독거노인(혼자 사는 늙은이)’이 되었다는 사실이 어쩐지 좀 거시기하게 다가옵니다. 주민등록을 혼자만 옮겨놓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인데, 혼자 사는 고령층이 빠르게 늘고 있는 농촌사회가 이 문제를 해결할 별 뾰족한 방도가 없다는 현실이 잠시 저를 우울하게 했습니다.


오늘은 왠지 이야기가 맥락이 없군요.


이곳에 귀촌한 이후 이런저런 인연으로 방문하는 이들이 가끔 있습니다. 오면 반갑고 가면 시원하고, 아무튼 그렇습니다. 다음 주 초에는 귀부인 세분이 이곳에 와서 하루 묵는답니다. 나이도 지긋한 70대 중반이어서 벌써부터 긴장이 되는군요. 손님 맞을 준비로 풀도 베고 잔디도 깎고 집안도 정돈하고.... 할 일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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