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양통신 1

by 김치호

“악양에 한 번 살아봐요”


봄가뭄을 적시는 단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산사(山寺)는 칠흑 같은 어둠에 묻혀 고요한데.... 빗줄기가 간간히 요사채 창을 두드리며 정적을 깨트립니다. 처마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 장단에 귀 기울이느라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 여기는 남도 땅 하동 악양입니다.

더 늦기 전 귀촌할 생각으로 최근 이곳 악양의 외진 산자락에 얼마간의 황무지를 마련하였습니다. 뒤로는 지리산 형제봉(해발 1,116m)이 올려다보이고 앞으로는 악양 들판과 저 멀리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입니다. 형제봉이 솟아있는 지리산 줄기는 하동군 악양면과 화개면의 경계를 이루고, 그 오른쪽인 동북으로 회남재(回南岾)를 넘으면 청암면 묵계리와 청학동으로 이어집니다. 죽어서는 내 혼백이 섬진강물에 띄워져 망망한 남해바다로 흘러가는 꿈을 꾸며, 형제봉 자락에 남은 생을 보낼 조그만 집 짓는 일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입니다.

악양과의 인연, 그리고 이곳으로의 귀촌을 결심한 지는 제법 되었습니다. 햇수로 15년이 더 되었으니 묵은 인연이라면 묵은 인연입니다. 그 무렵 나는 회색빛 도시에서의 반복적인 일상에 많이 지쳐있었고 짬나는 대로 악양 개치마을의 원성스님 토굴(수행처)을 피난처 삼아 드나들고 있었습니다. 천리길을 서둘러 오느라 진이 다 빠진 몸을 악양은 늘 말없이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그러면서 악양의 사철 풍광과 그 넉넉하고 안온한 분위기에 조금씩 빠져들게 됩니다. 섬진강 모래톱을 걸으면서 이 강물에 의지했던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떠올리고, 형제봉에 올라 지리산 골짜기 이곳저곳에 뼈를 묻고 흙으로 바람으로 돌아간 이들이 꿈꾸었던 세상을 반추하며 삶의 무게를 되짚어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5, 6년을 보냈을 즈음, 스님 토굴에서 바라보이는 섬진강과 지리산 자락의 수려한 경관에 넋이 빠져있던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오면 오고 가면 가나 보다 하던 스님이 그날따라 뭔가 집히는 게 있었던지 툭 한마디 던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오다가다 만 하지 말고, 정년 하면 복작거리는 서울 떠나 이곳 악양에 한 번 살아봐요. 풍광과 토성(土性)이 좋아 지낼만한 곳입니다.”


한 줄기 청신한 바람이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무튼 그 말이 씨가 되어 스님이 나서고 마을 이장과 신도들을 통해 적당한 땅을 찾는 수소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매물로 나온 단정한 집이 있었으면 했지만, 이왕이면 여생을 보낼 집이니 본인 생각을 담아 직접 지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스님의 부추김에 방향이 틀어진 것이지요.


생각과 달리 땅 마련은 여의치 않았습니다. 팔려고 내놓은 땅은 많았지만 눈에 들어오는 땅은 귀했습니다. 마음에 들면 상대는 값을 너무 높게 불렀고, 스님이 좋다고 권하면 내 마음은 저 멀리 도망가고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내가 발 딛고 살아갈 땅의 의미를 되새기고 숙고하게 만든 시간이자 과정이 아니었던가 합니다.


몇 차례 곡절을 거친 뒤, 형제봉 자락, ‘악양(岳陽)’이란 지명에 걸맞게 온통 바위에다 칡덩굴로 뒤덮인 황무지를 마련한 것이 2019년 4월 초였습니다. 지목이 답(畓)과 임(林)인 필지가 섞여 있는 걸로 보아 이전엔 계곡물을 끌어들여 벼농사를 짓고 매실과 녹차 등을 재배했던 모양인데, 여러 해 동안 가꾸지 않아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 땅입니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울창한 대나무 숲이 있고 대봉감 매실나무와 녹차밭이 제멋대로 펼쳐져있어 나름 오지 같은 분위기가 묻어납니다.


처음 이 땅을 보러 왔을 때의 인상과 느낌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비록 야생의 거친 땅이지만 양명(陽明)하여 따뜻해 보였고 남동으로 흘러내린 지세가 포근하고 아늑했습니다. 지금껏 온갖 허상을 좇아 사느라 지치고 병든 몸과 마음을 치유해 줄 것 같은 어떤 영험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이제 그 기운에 의탁하여, 그 기운을 좇아 그 야생의 거친 땅에 집 짓고 귀촌하는 여정을 시작하려 합니다.


오늘 오전에 국토정보공사(옛 지적공사)에서 나와 땅의 경계측량을 했습니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토목 설계를 하고, 진입 도로 개설과 집터 조성 공사가 뒤따르겠지요. 그러고 나면 건축설계, 시공, 준공.... 단계마다 이런저런 인허가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지금껏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고 가보지 않은 길입니다. 그래서 더 아득해 보이고 힘들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새로운 과업에 대한 호기심에다 약간의 도전감마저 느껴지고 있어 그것으로 버텨볼까 합니다.


오후에는 전입신고를 함으로써 이제 어엿한 하동군 악양면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농업기술센터, 농산물품질관리원 등을 방문하여 귀촌 관련 정보를 알아보고 전업농업인(농업경영체) 자격을 취득하는 절차를 밟았습니다. 땅의 일부가 임야라서 임업경영체 자격도 얻어두는 것이 좋다기에 전북 남원의 산림청 서부지원에 전화로 절차와 준비서류를 문의했습니다.


바쁜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