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양 속으로 한 걸음 더
틈나는 대로 악양 땅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풍광 앞에서는 잠시 머물고, 눈에 들어오는 집이 있으면 그 입지와 주변 지세를 살펴봅니다. 어쩌다 집주인 만나면 통성명하고 세상사 운을 띄워볼 때도 있습니다.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찻집이나 맛집도 귀동냥해서 알아야 할 테고, 그들이 살아가는 얘기를 들을 수 있으면 더 좋겠다 싶지요.
우리 지명에 볕 양(陽)자가 들어있는 고장은 대개 뒤로는 큰 산을 등지고 있고 앞으로는 강이나 큰 개천이 흐릅니다. 흔히들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지세라고 하지요. 서울의 옛 이름 한양(漢陽)이 대표적이고 제 고향 밀양(密陽)이 그렇습니다.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악양(岳陽)도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세를 갖춘 땅입니다. 뒤로는 형제봉을 주산(主山)으로 하여 지리산 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치고 앞으로는 섬진강이 흐릅니다.
이중환(李重煥 1690∼1756)은 <<택리지 擇里志>> 지리산 편에서 악양을 ‘청학동’으로 소개합니다. 또 그는 사람이 살기 좋은 땅(可居地)이 갖추어야 하는 네 요소로서 지리(地理), 생리(生利), 산수(山水), 인심(人心)을 꼽았습니다. 풍수적 길지(吉地), 생업과 물류에 유리한 입지, 아름다운 풍광, 세시풍속과 사람들의 인성 등을 의미하는 것들일 텐데요. 시대가 바뀌어 곧이곧대로 따를 수 없는 항목도 있겠으나, 아무튼 악양은 태평성세의 이상향인 ‘청학동(靑鶴洞)’에 비정될 정도로 예로부터 그 네 요소를 두루 갖춘 살기 좋은 고장으로 이름났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악양’이란 지명이 많은 이들에게 익숙해진 데에는 박경리 소설 <<토지>>의 영향이 절대적이지 않았을까요? 소설의 주무대인 평사리에 최참판댁과 그에 딸린 집들이 지어지고, 드라마 세트장이 들어서면서 악양은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관광지가 된 지 오래입니다. 하나 재미있는 것은 이곳을 찾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소설 속의 허구적(fictional) 공간을 실제적 공간으로 착각한다는 사실입니다. 저도 가끔 그렇게 느낄 때가 있고요. 소설가의 상상력으로 창조된 시대공간과 이야기를 의식 속에 내재화하고 역사화하는 문학의 위대함이라 해도 될까요?
오늘은 회남재로 차를 몰았습니다.
회남재(해발 740m)는 동북쪽으로 악양면과 청암면의 경계선에 있는 고개인데요. 고개를 넘으면 청암면의 청학동과 묵계초등학교로 가는 비포장의 좀 거친 길이 이어집니다. 예부터 회남재는 함양 산청 하동 등 지리산 언저리 사람들이 널리 이용하던 교통로였고, 20년 전쯤 악양 5일장이 폐쇄되기 전만 하더라도 청암면 산골 사람들이 장날이면 약초와 산나물을 이고 지고 넘던 고개였습니다.
고개 마루에 올라서니 지리산 능선과 악양 들판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왼쪽 능선은 깃대봉-칠성봉-구재봉으로 이어지고, 오른쪽으로는 형제봉-신선대-고소산성으로 이어지며 악양 들판을 감싸고 달리다 섬진강 속으로 꼬리를 감춥니다. 아늑하여 풍요롭고 평화로운 풍광에 빠져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이곳 악양 출신인 유성준·이선유 명창의 판소리기념관에 들렀습니다. 유성준(劉成俊 1874~1949)은 근대 판소리 5대 명창 중 한 분이자 송만갑(宋萬甲 1865~1939)과 더불어 동편제의 양대 산맥으로 불립니다. 이선유(李善有 1874~1949) 명창은 우리나라 최초의 판소리 다섯 마당 창본인 <<오가전집 五歌全集>>을 펴냈으며 입신(入神)의 기(技)를 가진 동편제의 또 다른 큰 줄기입니다. 두 분이 같은 해 태어나고 같은 해 돌아가신 후 같은 곳에 기념관이 세워진 것도 참 특별한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끔 이곳에서 판소리 관련 행사가 열릴 것이고 이웃 마을 마실 가듯 편하게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넉넉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늦은 오후, 마을회관 앞 너른 마당에서 열린 <입석마을 한마음 잔치>에 참석했습니다. 두어 달 전쯤 농업경영체 신청 서류에 마을 이장의 확인서가 필요하여 이장을 찾았을 때 이장이 이날 마을 행사가 열리는데 시간 되면 참석하여 마을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고 안면을 터면 좋지 않겠느냐고 하길래 당연히 그러겠다고 했었지요.
입석리는 악양면에서도 큰 마을이고 귀촌인구 비율이 하동군에서 제일 높다고 합니다. 인사를 나눈 마을 분 가운데서도 외지에서 귀촌한 이들이 많았고요. 모두가 좋은 이웃이 되어보자며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주었습니다.
푸짐한 먹을거리에다 오랜만에 나이 지긋한 노친네들의 장기자랑과 재롱(?)을 보는 것이 즐거웠고, 때가 되면 나도 그 속으로 들어가 함께 어울릴 수 있기를 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