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장 나들이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습니다
9월로 접어드니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함이 느껴집니다.
집 짓는 일은 뒷전이고 5일장 나들이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습니다. 집터 조성에 따라붙는 각종 인허가 절차는 건축주가 원한다고 해서 그때그때 바로 처리되는 것도 아닌 데다 의뢰받은 설계사무소도 내 일만 하는 것이 아닐 테니 진척이 없다고 안달하기보다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 외에 딱히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5일장 나들이는 그로 인한 스트레스와 잉여시간을 적절히 해결하는 방편이라고나 할까요.
농촌 인구가 줄면서 지역의 활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지는 어제오늘이 아니지요? 그 흐름의 중심에 5일장의 쇠락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테고요. 이곳 악양 5일장이 없어진 지 20년이 넘었고, 남아 있는 군내 5일장들도 장세가 예전만 많이 못하다고 합니다. 교통통신이 발달하고 인터넷에 기반한 물류시스템이 보편화되다 보니 5일장의 폐쇄 또는 쇠락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유년 시절 시골 5일장의 추억이 있는 연배의 눈에는 그런 세태가 아쉽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대개 마을에서 십리 안팎에 하나씩 있던 5일장은 만남과 소통, 물류와 상거래의 중심이었습니다. 사고파는 것은 기본이고 한 동안 보지 못한 지인들과 만나 안부를 주고받고 농사 작황에 관한 정보도 나누던 장이었습니다. 5일장이 어른들만의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장마당은 신기한 물건들을 보며 새로운 세계를 꿈꾸고 상상력을 살찌우던 곳이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가기 전은 물론이고 학교 들어가서도 장이 서는 날이면 괜히 몸이 근질거렸고 동무 몇이랑 또는 엄마 졸라 장 구경에 나서곤 했지요. 쭉 늘어선 점포와 난전에 펼쳐진 수많은 물건들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지다가도 역시 눈에 들어오는 건 좌판의 엿이나 알사탕과 같은 먹을거리였습니다. 꼭꼭 숨겨 아껴둔 십환짜리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망설이지만 그 유혹을 어린 영혼이 어찌 이겨내겠습니까. 돌아오는 신작로 십리 자갈길이 한없이 멀게 느껴졌고 막걸리 한잔 걸치고 갈치 한 마리 지푸라기에 묶어 사들고 가는 동네 할아버지 말동무하며 그 길을 걸었습니다.
악양에서 손쉽게 갈 수 있는 5일장은 하동장, 구례장이고 좀 더 거리를 넓히면 광양 옥곡장, 순천 아랫장 웃장 등입니다. 제일 가까운 하동장엘 주로 가지만, 물건이 풍성하고 가격도 좋은 구례장도 가끔 갑니다. 옥곡장은 이보다 전통적인 시골 장 분위기가 남아 있어 좋고요.
집터 조성과 관련된 설계와 인허가가 차일피일 늦어지고 그 남는 시간에 5일장 나들이에 재미를 붙이고 있지만, 귀촌한 이들에게 장 나들이는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이자 힐링이기도 합니다. 구경하면서 재미있고 사면서 즐겁습니다. 곳곳에 활기 넘치는 사람소리 가득하니 이처럼 매력적인 데가 또 어디 있을까요.
단출한 식구라 딱히 이것저것 살 것은 많지 않습니다. 물건 사러 가는 것보다 사람냄새 물씬 나는 그 분위기가 좋아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충만한 에너지를 느껴보고 싶어 장 나들이에 나선다고 해도 될까요. “장 보러 간다”는 말 그대로 장 구경 가는 것이지요. 그래도 직접 기른 이런저런 푸성귀를 널어놓은 할머니들의 물건을 조금씩 사드리고, 빨리 팔고 밭일 가야 한다는 아주머니의 성화(?)도 들어주다 보면 어느새 바구니가 가득해집니다. 몇 번 가다 보니 단골이 된 과일노점 사장과의 대화도 빼놓을 수 없고요. “실하고 때깔 좋은 물건은 취급하기 어렵다. 그런 물건들은 서울 백화점으로 가는 게 맞고, 여기는 여기 나름의 수준에 맞는 물건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가격표 붙은 대로 깔끔하게 카드결제하고 나오는 도시의 대형마트와는 달리 때 묻은 거스름돈 주고받는 손길이, 슬쩍 한두 개 더 챙겨주는 인정이 있습니다. 언젠가 좀 이른 시각에 뭘 하나 샀더니 마수걸이했다며 받은 돈을 이마에 붙였다 떼며 고맙다고 하던 아주머니의 환한 표정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은 구례장엘 왔습니다. 시장통에서 돼지국밥 한 그릇 먹고 표고버섯 호박 햇고구마랑 몇 가지 찬거리를 샀습니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장터사람들을 보면서 바로 저 사람들이 바닥 경제를 떠받치고 있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그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 장날을 기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