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양통신 32

by 김치호

서릿발 밟는 소리가 정겹습니다


또 꽃샘추위인가요?


어제 한차례 비 온 뒤 밤새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선돌이 물그릇도 꽁꽁 얼었습니다.


이른 아침 산책길에 선돌이가 저만치 앞서 내달립니다. 찬 공기에 몸이 움츠러들고 하얀 입김이 뿜어나지만, 뽀드득뽀드득 서릿발 밟는 소리가 정겹습니다.


청신함이 가득한 산촌의 봄날 아침. 오늘따라 하늘엔 구름 한 점 없고,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눈이 부십니다. 그 맑고 따스한 햇살에는 옅은 봄냄새와 만발한 매화의 문안인사가 실려 있으니 이처럼 화려한 아침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눈앞에 펼쳐지는 화려한 매화의 문안인사는 커텐이나 블라인드가 없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집을 지으면서 집 안과 밖의 나눔과 그 경계를 최소화하느라 창을 많이 내고 어떤 형태의 가림막도 설치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어쩌면 신의 한 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침에 눈 뜨면 밖이 보이고 해 지고 어두워지면 모두 사라집니다. 그리하여 조금은 자연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바야흐로 자미산방의 매화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요 며칠 낮 기온이 25도에 육박하면서 속도가 한층 빨라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꽃샘추위로 잠시 쉬어갈 듯싶지만, 절정으로 치달아야 하는 그 강렬한 자연의 욕망과 질서를 어찌하겠습니까.


어제 내린 비가 일조를 했는지 계곡 물소리가 조금 더 커졌습니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계곡 물소리에 섞여 들립니다. 쑥과 개망초가 지천으로 돋아나고 머위도 얼굴을 내밀기 시작합니다. 지난 12월에 심은 곤달비도 혹한을 이겨내고 새싹을 틔워 올립니다. 매화보다 좀 늦게 피는 살구 자두 개복숭아도 열심히 꽃몽오리를 만들고 있고요.


그렇듯 자연의 질서를 관조하거나 초목이 나고 자라는 현장을 눈에 담아볼 때면 늘 경이로움이 함께합니다. 그 경이로움에 빠져 과수나 꽃나무 심는 일을 멈추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집 주변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투리땅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될 듯싶고요. 어제도 비 맞으며 하동장에 나가 금목서 은목서 천리향 동백 한 그루씩, 치자 5그루를 사 왔습니다. 비 내린 뒤 촉촉해진 땅에 심을 생각을 하니 벌써 몸이 근질거립니다.


오늘도 선돌이 이야기로 마무리합니다. 애써 가꾸어온 꽃밭을 파헤치거나 올라오는 새싹을 물어뜯는 일은 여전하고요. 더 꼴 보기 싫은 것은 그 새싹들 위에 퍼질러 앉아 놀거나 가로누워 낮잠을 즐기는 것입니다. 그 꼴을 보며 속을 끓이고 있는 주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봄바람에 몸을 내맡긴 채 부드럽게 흔들리는 대나무 숲의 율동이 무척 평화로워 보입니다.


오늘은 선돌이의 백일입니다. 저녁에는 특식을 만들어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꼴 보기 싫어도 어쩌겠습니까. 한식구이니까요.

작가의 이전글악양통신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