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고 거칠게
머릿속에 구상하고 있는 악양 집의 개념(concept)입니다.
“Simple and Wild”
저 두 단어의 조합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허(虛)와 휴(休)의 공간적, 건축적 의미를 생각하고, “자연 속의 집, 집 속의 자연”, 생태, 치유, 평심(平心) 등등의 말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칡덩굴로 가득하던 황무지가 집터로
4월이 가고 5월이 가고 있습니다.
아카시아꽃이 지고 밤꽃이 피고 있습니다.
악양 땅 집터 공사는 생각처럼 매끄럽지 않았습니다. 5월 중순에 사흘 동안 장비가 들어와 전체적인 터 윤곽을 잡는 단계까지 갔으나 큰 비를 만나면서 작업은 중단되었고, 또 땅이 마르고 굳기를 기다리느라 여러 날을 보낸 뒤에야 끝낼 수 있었습니다. 소소한 부분은 집을 지으면서 또는 집을 다 짓고 난 뒤 마무리되어야 하겠지만, 이로써 건축자재를 실은 차가 들어올 수 있고 집 지을 작업 공간이 마련된 것입니다.
인간의 손이 닿으면 바위와 칡덩굴로 뒤덮였던 황무지가 며칠 사이에 길이 되고 집터가 되는 과정이 놀랍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한편으로 뭇 생명들이 살고 있는 평온한 생태공간을 허물고 뒤엎는 것이니.... 터 작업을 하면서 나름 최소한으로 파헤치느라 마음을 썼지만 어찌 지나침이 없었다고 하겠습니까?
조성된 집터에 섰을 때 바로 눈앞에는 매실밭, 저 멀리 악양 들판과 그 너머로 구재봉이 무한으로 펼쳐지고 뒤로는 형제봉이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건축가는 저 열린 공간의 풍광을 어떻게 최적화하여 집안으로 끌어들일 것인가? 그리하여 이 새로운 공간에서 사람과 자연이 어떤 방식으로 교감하고 더불어 살아갈 것인가? 지금 그 상념의 중심에 제가 서 있습니다. 앞으로 집 짓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지 이런저런 궁금증에다 기대감이 더해지고 있으니.... 계속 가보겠습니다.
처음으로 창고로 지어진 컨테이너에서 잠을 잤습니다. 안락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다지 불편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른 시각에 눈 뜨니 산속의 맑은 공기가 청신했고,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초목의 신록이 찬란했습니다. 이 불안한 코로나 시기에 외진 산자락, 거친 공간에서 맑은 공기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는 이 시간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