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목욕을 하다
2003년 12월부터 2004년 8월까지 약 9개월 동안 사회복지전담공무원으로 일하기 위해 다니던 복지관을 그만두고 시험 준비를 하였다. 당시 공무원시험 학원이 많은 노량진에서 10분 거리인 상도동 성대시장 꼭대기에 살고 있었다. 3개월간 종합반 강좌를 수강하고 2개월간 문제풀이반 강좌를 수강했다. 그리고 나머지 기간은 자습을 하였다. 서울시와 경기도의 시험에 1회씩 응시하였지만 낙방하였다. 큰 점수 차이로 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나의 정신력과 인내심은 낙방 후 또 1년간 기약 없는 공부를 해야 할 정도로 강하지 못했다.
결국 사회복지사 인력 모집 사이트인 웰페어넷을 드나들며 사회복지사 구인 정보를 검색하고, 여러 기관에 입사지원서를 제출했다.
2개 기관에서 1차 서류전형에서 합격 후 면접을 보러 갔다. 그 중 한곳은 최종 합격은 되지 않았으나 좋은 인상이 남았다. 그 기관의 기관장이 포함된 심사위원들에게 면접을 보았다. 심사위원들의 자세가 지원자들에게 유독 정중하다는 인상을 갖게 되었다. 면접이 끝난 후 취업준비생을 위한 자기관리 책 한권과 약간의 여비가 든 봉투를 주었다. 피면접자에 대한 배려가 이러한 기관이라면 서비스 대상자들에게도 정중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합격을 희망했었으나 결국 낙방하게 되었다.
얼마 후 은평구에 있는 사회복지법인 은평천사원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에 취업하게 되었다. 근무 부서는 지역사회재활팀 이었다. 이동목욕 업무를 담당할 사회복지사 모집에 합격하였다. 몇 번의 고배 끝에 들려온 합격 소식이 기뻤다. 그리고 다시 출근할 수 있었다는 것이 기뻤다. 당시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은 법인에서 운영하는 보육시설, 재활병원, 특수학교 등의 시설과 같은 공간에서 운영되고 있었다.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는 사회복지법인 산하 기관이었다.
내가 근무한 지역사회재활팀에서는 재가복지, 이동목욕, 물리치료, 장애인정보화 사업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동안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면서 재가복지 업무를 못한 것이 아쉬웠었다. 사회복지사가 꼭 거쳐야 할 업무가 재가복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새 직장에서 당장 인원을 모집하는 분야는 재가복지가 아닌 이동목욕 이었으나, 그곳에서 성실히 일하면 같은 팀에 속해 있는 재가복지 업무로 이동할 기회가 오겠지 라는 나름의 청사진이 있었다. 그러나 이동목욕 업무를 하다 보니 이동목욕 업무에서 여러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일하는 재미를 다양하게 느꼈다. 이동목욕은 목욕이라는 장애인 가정에 꼭 필요한 수단을 매개로 하는 재가복지서비스라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같은 팀 내에서 굳이 재가복지업무를 맡고 싶다는 생각은 사라지게 되었다.
지역사회재활팀에서는 2대의 이동목욕차를 운영하고 있었다. 서비스지역은 은평구 구산동, 갈현동, 불광동, 구파발, 진관동, 신사동, 증산동, 수색동 등 이었다. 한 대는 은평구 예산, 한 대는 서울시 예산으로 운영되어 서대문구 일부 지역도 방문하였다.
이동목욕 차량 중에는 트럭 뒤에 목욕시설을 설치하여 대상자를 차량으로 옮겨서 목욕서비스를 제공하는 차량도 있었지만,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는 그보다 작은 차량인 15인승 승합차량을 이동목욕차로 사용하였다.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이동목욕서비스 이다 보니 서비스 대상자가 중증장애인이거나 와상 환자여서 집 밖 차량까지 이동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은평구 지역에는 대형차량이 들어가지 못하는 꼬불꼬불한 골목이 많았다. 이동목욕차량은 15인승 봉고차를 개조하여 1열과 2열만 남겨 5명이 탑승 할 수 있었고, 그 뒤에는 보일러, 물통, 이동 욕조, 펌프 및 목욕장비 등이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목욕 할 때마다 욕조, 펌프, 목욕 도구 등을 옮기고 호스를 연결하고 목욕 후 배수하고 욕조를 닦는 등의 일을 반복해야 했다.
출근하여 이동목욕차량에 물을 받고 보일러로 물의 온도를 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봉사자, 공공근로 선생님과 함께 약속된 장애인 가정에 방문한다. 일반적으로 이동목욕을 위해 오전에 두 가정 오후에 세 가정 정도 방문하였다. 대상자 가정에 도착하면 욕조를 설치하고, 남자 공공근로 선생님과 함께 대상자를 욕조에 옮긴다. 서비스대상자가 남성일 경우는 목욕도 직접 하였다. 목욕을 마치고 복지관으로 돌아오면 차에 남아있는 물을 모두 버리고 다음날 장비를 다시 쓸 수 있도록 정비한 후 서비스 기록지를 작성하고 퇴근한다.
내가 일하던 당시 진관동, 기자촌, 구파발은 은평뉴타운이 건설되기 직전이어 대부분의 주택이 매우 노후한 철거를 앞둔 주택이었다. 수색도 아파트는 몇 곳 없었고, 증산동과 신사동의 서비스대상자도 대부분 빌라에 거주하였다. 불광동은 매우 고불고불하고 좁은 골목이 많아 목욕 후 차를 돌릴 수 없어 50미터 이상 되는 좁은 골목길을 후진으로 조심스레 들어가야 하는 곳도 많았다.
서비스대상자의 집에 도착 후 차량 안의 이동욕조를 대상자가 있는 거실이나 방 까지 옮긴다. 욕조는 일반가정 욕실에서 볼 수 있는 욕조와 같은 무게감 있는 재질이다. 욕조테두리에 쇠로 된 프레임을 부착하여 프레임을 붙잡고 빌라 계단을 이동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정확한 무게는 기억이 안 나지만 평소 20kg 쌀을 자주 옮기고, 군대에서 포탄을 자주 옮기던 포병출신인 내가 추측하기에 약 35kg 이상이다. 두 명이 앞 뒤 에서 들어도 무게감이 많이 느껴진다. 무겁고 부피가 큰 욕조 들고 좁은 빌라 계단을 4층 5층 올라간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종종 도와주고 싶어 하는 봉사자 분들이 있었지만, 좁은 계단을 옮길 때 두 명 이상이 욕조에 붙으면 욕조가 움직일 공간이 나오지 않아 오히려 방해가 될 때가 많다. 나는 키가 189cm여서 욕조를 들고 계단을 먼저 오를 경우 허리를 과도하게 숙여야 했다. 항상 계단 아래쪽에서 욕조를 옮기다 보니 이동목욕 업무를 하던 18개월 동안 욕조의 하중이 그대로 척추에 누적 되었다. 거실이나 방안까지 욕조를 옮긴 후 차의 따뜻한 목욕물이 욕조까지 갈 있도록 호스를 연결한다. 욕조에는 목욕 중, 목욕 후 더러운 물이 배수 될 수 있도록 실내 화장실까지 펌프와 호스를 연결한다. 욕조에 물을 받고 준비가 되면 대상자를 욕조 위로 옮긴다. 욕조 위에는 사람이 누웠을 때 높이조절이 가능하도록 강철프레임과 매시재질로 된 해먹이 욕조와 일체형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욕조가 더 무겁다. 해먹을 팽팽히 한 후 목욕대상자를 그 위에 눕히고 손잡이를 천천히 돌리면 해먹이 느슨해지며 몸이 천천히 욕조 물에 잠긴다.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이동목욕서비스라 목욕서비스 과정이 무척 힘든 대상자가 많았다. 걷지 못하는 분도 많았고, 가정에서 목에 삽입관을 한 상태로 의식도 없고 의사표현도 하지 못하는, 몸이 굳어 뻣뻣한 와상환자가 여러 명 있었다. 이러한 가정은 목욕 시 감염 주의가 필요하고, 욕조까지 옮길 때 낙상의 위험이 많았다.
좁은 방안이나 거실에서 물이 담긴 욕조에 전기를 쓰는 배수펌프를 연결하고, 오랜 와상생활로 인해 몸이 뻣뻣하게 굳은 상태로 목에는 장기간 삽입관을 부착하여 손가락만한 구멍이 있는 의식 없는 중증장애인을 옮기고 씻기고 하는 일은, 익숙해지더라도 이동목욕서비스 내내 매우 조심스럽고 긴장되는 일이었다. 이러한 가정에 방문할 때는 이동목욕 경력이 많고 간호사 근무 경력이 있는 팀장님과 함께 방문하여 목욕을 한다. 매우 조심스러운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한국 사람은 목욕은 시원하게 해야 하는 것이라는 철학이 있는 이동목욕 경력이 많으신 팀장님의 손길은 늘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팀원들도 닮아 갔다. 돌이켜 생각하면 이런 근무환경에서 사고 없이 일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의 도우심이라고 본다.
이동목욕은 2개조로 운영되었다. 각 조는 남성 여성 사회복지사 각 1명과 남성 여성 공공근로 각 1명 총 4명을 최소 인원으로 하고 자원봉사자 분들이 도와주셨다. 자원봉사자 분들은 대부분 장기 봉사자셨다. 직원들은 2~3년 안에 바뀌는 경우가 많은데 자원봉사자들은 10년 이상 하시는 분들이 계셨다. 은평천사원은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이 장기 거주하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동목욕 서비스에 일회 참여하는 봉사자와 함께 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였다. 조심스럽고 민감한 목욕서비스의 유의사항을 매번 알려주기도 어렵고, 목욕하는 사람이 매번 바뀌는 것이 목욕서비스를 이용하는 분들에게도 좋지 않다고 판단 했다. 그래서 장기 봉사자들이나, 낮 시간대에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이 가능한 게스트하우스 거주 외국인 봉사자들이 이동목욕서비스에 많이 참여 하였다. 3개월 ~ 1년 정도 함께 일한 외국인 봉사자 중에서는 프랑스, 네덜란드, 일본, 대만, 독일에서 온 외국인도 있었고, 미국에서 온 교포자녀, 어릴 적 북유럽으로 입양을 갔다가 한국이 궁금하고 생모 생부를 찾아보기 위해 한국에 온 청년들도 있었다. 덕분에 이동목욕 차량은 매우 인터내셔널 한 환경이었고 목욕 대상자분이나 가족 분 중 호기심이 많으신 분들은 외국인 봉사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시기도 하였다. 북유럽으로 입양을 갔다가 한국에 방문한 청년들과 비교적 많은 시간을 가졌고 퇴사 후에도 종종 만나 개인적인 교류를 하면서 그 친구들이 외국에서 어떤 환경과 교육 하에서 자랐는지 어떤 마음과 기대로 한국에 오는지 대략 알 수 있었다. 짧은 영어 덕에 그리 긴 대화는 못 나누었지만 어느 겨울날 한 친구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15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은평구 갈현동의 고지대에 사는 목욕서비스 이용자 가정에 방문할 때의 일이었다. 때는 2005년 겨울이었고 공공근로 선생님이 몸이 안 좋아 출근을 못했다. 파트너였던 여성복지사도 어떤 사정으로 나올 수 없었다. 결국 덴마크에 입양을 갔다가 한국에 방문한 봉사자와 함께 둘이서 목욕을 위해 출발하였다. 얼마 전 많이 온 눈 때문에 올라가던 언덕길에 약간의 빙판이 있었다. 하필 차량은 그쪽을 지나야 했고 뒤쪽이 유독 무거운 이동목욕 차량의 특성상 앞바퀴가 자꾸 헛돌아 위험할 수 있었다. 나는 상황을 설명하고 이대로 후진하여 언덕을 내려가야 할 것 같은데 위험할 수 있으니 일단 차량에서 내리라고 하였다. 차량 밖을 보며 잠시 상황을 파악하던 그 친구는 자기가 앞좌석 문을 열고 힘주어 그쪽을 밟으면 차가 올라갈 수 있지 않겠냐고 그렇게 해보자고 이야기 했다. 나는 그렇게 까지 안 해도 된다, 위험할 수 있으니 후진해서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그때 그 친구가 기억에 남는 말을 해 주었다. “I think, i can trust you”. 그 친구의 고집으로 나는 차량을 천천히 전진시켰고 그 친구가 몸의 반동을 이용해 순간적으로 차량 앞바퀴에 무게를 준 덕에 앞바퀴가 빙판을 누르며 빠져나와 무사히 이동목욕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다.
“I think, i can trust you” 그 친구가 몇 계절을 함께 이동목욕을 하며 보아온 내 운전 실력을 믿을 수 있어서 해준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동목욕을 그만두고 다른 곳에서 일하던 순간에도 종종 그 말이 생각날 때가 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저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지금 내가 그렇게 행동하고 있나? 앞으로도 살면서 종종 내 머릿속에서 울릴 목소리이다. 지금 내가 제대로 하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