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콕일기(5) 산에서는 까불지 마라

by 구민성

산에서는 까불지 마라









adventure-1850178_640.jpg 까불면 위험해!

우리 지영이가 여고 1학년 때의 일이다. 그때는 입시학원을 운영하던 때라서 영어 강사와 지영이 친구들을 데리고 1박 2일 캠프를 갔었다. 밀양에서 봉고차를 내가 운전하여 가야산으로 향했다. 새벽 일찍 찬물에 대충 밥 말아 먹고 장거리 운전을 했으니까 배가 좀 고팠다.


그래도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민박 방을 잡고 바로 단거리 산행을 나섰다. 애들은 김 선생에게 부탁해놓고 빈속에 빈손으로 출발했다. 나는 산 냄새만 맡아도 좋아서 펄펄 뛰는 사람이다. 그 당시에는 더 심해서 어떤 일요일은 산행 마치고 집에 와서 저녁 먹고 다시 야간 산행을 갔던 날도 더러 있었다.


나에게 좋지 않은 산이 없듯이 그 산도 역시 좋았다. 해인사 쪽에서는 몇 번 올랐지만, 백운동 쪽에서 시작하기는 처음이었다. 나무 계단이 약간 거슬리는 것 말고는 새소리며 숲 냄새며 기온까지 다 좋았다. 출발할 땐 30분 정도만 갔다가 바로 내려온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배낭도 없이 시작했는데 막상 오르다 보니 나무도 좋고 코스 자체가 워낙 좋아서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한 시간쯤 갔을까? 갑자기 소나무가 빙빙 돌고 큰 바위도 마구 돌았다. 두 다리가 흔들리다가 나도 모르게 주저앉았다. 갑자기 추워지는데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운동으로 나오는 땀이 아니다. 앉은 그 자리에서 구토를 했다. 머리가 빠개질 듯이 아픈데도 정신은 말짱했다.


아하! 저혈당이구나. 공복에 운동량이 많으면, 나 같은 당뇨 환자는 틀림없이 저혈당 상태에 빠진다. 큰일이다. 뭐라도 먹어야 한다. 그래야 산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정상에 가면 사람들이 있겠지. 거기서 얻어먹으면 되겠지. 죽을힘을 다해서 엉금엉금 기어올랐다. 그 와중에도 둥글레 줄기가 보였다. 손으로 땅을 파서 새끼손가락 정도 되는 뿌리를 두 개 먹었지만, 주린 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기고 쉬고를 몇 번이나 반복하다가 하산하는 중년 부부를 만났다. 사정 이야기를 하고 먹을 것을 부탁했더니, 하산길이라 남은 게 거의 없다며 초코파이 두 개를 주더라. 그걸 먹고 계곡 물을 마시니까 조금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앞쪽으로 보니 정상이 별로 멀지 않은 것 같아서 또 오르기 시작했다. 정상에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믿고 그 중년 신사의 하산 권유도 흘려넘겼다. 하지만 정상이 가까워 보인 것은 착시현상이었던 것 같다. 조금 걷다가 또 무너졌다. 죽음의 그림자를 느꼈다. 고통 때문인지 무서움 때문인지 하여간 눈물도 흘렀다. 엎어져서 울다가 깜빡 정신을 잃었던 모양이다.


눈을 떴을 땐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두 청년이 나를 흔들면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사정 이야기를 하고 먹을 것을 부탁하니 라면 한 개와 밀감 두 개를 주는 것이다. 그 청년들도 하산길이라 남은 게 그것밖에 없다고 했다. 부축해줄 테니 내려가자는 권유에 고맙다는 인사만 하고 먼저 내려가라 했다. 떨리는 손으로 생라면에 스프 뿌리고 밀감과 함께 먹었다. 아직도 정상이 많이 남았다는 청년들의 말을 떠올리고서야 착시현상이었음을 알았다. 다리가 계속 후들거려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조금 내려오다가 계곡 물에 발 담그고 쉬는 중년 부부를 만났다. 그런데 부인이 배낭에서 빵 하나를 꺼냈다. 사실은 며칠 전에 산 빵이라 아까는 못 주었다면서 이거라도 먹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대뜸 “고맙습니다”하고 얼른 받아먹었다. 유통기한이나 체면 따위가 무슨 걱정인가?


인사를 몇 번이나 하고 내려오다가 계곡 물에 발을 담갔다. 조금 살 것 같았다. 담배를 찾느라고 주머니를 뒤지면서 기절할 만큼 놀랐다. 조끼 주머니 양쪽에 달걀만 한 삶은 고구마가 네 개 있었다니! 출발할 때 소명이가 ‘혹시 모르니까요.’하며 준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왜 몰랐나? 아무리 작아도 그렇지, 엎드려 땅을 파면서도 무게감을 왜 못 느꼈을까? 뭐가 씌면, 애 업고도 애 찾는다더니!




지금까지 1,300회 이상의 산행 중에서 가장 위험했던 산행으로 기억한다. 산행의 경력이 늘어나면서 내가 교만해졌기 때문이리라. 단독 산행인데도 산을 만만하게 본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30분 만에 내려온다는 생각에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고생의 원인이었고, 다른 사람의 조언을 귀담아듣지 않은 것이 위험의 본질이었다. 후회하면서 건져 올린 이런 깨달음이 그나마 소득이라 할까.


처음 장소로 돌아오니 김 선생과 애들은 왜 이리 늦었냐고 눈을 흘기고, 버드나무 위의 매미들은 나를 놀린다고 시끄러웠다.


산은 늘 묵묵히 있었지만, 내가 너무 까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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