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술 레인지 (2/4)
“재호야. 네가 여기에 밀감 넣어 뒀지? 나중에 엄마 몰래 먹으려고…….”
나중이 아니고 이미 먹었지만 재호는 딱 잡아뗐어요.
“아, 아니, 아니야. 엄마, 절대 아니거든. 내가 왜…….”
“이상하네. 그럼 내가 넣어 뒀던가? 요새는 건망증이 하도 심해서…….”
엄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깐 나간 사이에 재호는 전자레인지 속을 살펴보았어요. 밀감 껍질은 손톱만큼도 없었어요. 분명히 아까 넣어뒀는데 말이에요.
엄마가 계산대에서 전화받을 동안에 재호는 밀감을 한 개 더 까먹었어요. 손도 빠르고 입도 빠르게 까먹고는 껍질을 또 레인지 속에 넣었어요.
엄마가 김치찌개를 데우려고 전자레인지 앞에 섰어요. 재호는 또 간이 콩알만 해졌어요. 아, 저 문 열면…….
“어머, 내가 아까 밀감을 안 꺼냈나? 정말 건망증이 너무 심하네.”
엄마는 건망증이 심하다고 했지만, 건망증 없는 재호도 정신이 이상해졌어요. 분명히 껍질을 넣었는데 탱탱한 밀감이 나오다니, 그것도 두 번씩이나요.
재호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엄마에게 모두 말해버렸어요.
“뭐라고? 얜 무슨 만화 같은 소릴 해? 너도 정신없어?”
“아니, 엄마. 진짜야. 내가 분명히 껍질을 넣었는데…….”
“아, 시끄러! 안 그래도 정신없는데 너까지 왜 그래?”
엄마가 딱 잘라버리니까 재호는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어요. 그래서 엄마에게 실험을 해보자고 했어요. 재호는 엄마가 깎아놓은 오이 껍질을 레인지에 넣었어요.
“엄마, 잘 봐. 뭐가 나오는지.”
재호는 전자레인지의 문을 활짝 열었어요.
짜잔!
전자레인지에서 싱싱한 오이가 하나 딱 나왔어요. 재호는 이순신 장군이 칼 뽑는 것처럼 허리에서 오이를 척 빼 들었어요.
“어머머! 이게 뭐야? 세상에 세상에! 말도 안 돼!”
엄마가 놀랄 때는 말소리가 지면서 빨라지기도 해요.
“어때, 엄마. 내 말이 맞지?”
“그…래. 맞긴 맞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엄마의 눈은 아까 그 밀감만큼 커졌어요.
“헤헤. 내가 요술을 부렸거든. 엄마도 한 번 해봐.”
“아니야. 난 안 될 거야.”
엄마는 믿지 않고 의심하면서 달걀 껍데기를 넣었어요. 조금 있다가 문을 열어보니 그냥 껍질 그대로였어요.
“봐. 나는 안 되잖아.”
엄마는 실망하는 눈빛으로 재호에게 다시 해보라고 했어요. 그런데 재호가 달걀 껍데기를 넣었더니 이번에도 탐스러운 갈색 달걀이 나왔어요. 당근과 무 껍질로도 실험을 했는데 엄마는 자꾸 실패하고 재호는 늘 성공이었어요. 엄마는 놀란 가슴을 겨우 진정하면서 이모에게 전화했어요.
저녁에 이모가 와서 실험했는데 엄마처럼 번번이 실패였어요. 하지만 재호가 홍시, 키위, 마늘까지 계속 성공하는 것을 보았어요. 이모는 다른 전자레인지를 사 줄 테니 바꾸자고 했어요.
엄마가 안 된다고 하니까 이모는 두 개나 사 주겠다고 했어요. 엄마는 두 개가 아니라 스무 개를 사 줘도 안 된다 했고, 이모는 그만 삐져서 가버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