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의 두 남자
“야 인마,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김종우가 왼쪽 어깨를 삐딱하게 올리면서 물었다. 그는 폼생폼사의 사나이다. 머리 스타일은 로마 장군의 투구처럼 가운데만 털이 수북하다. 감색 마스크는 입이나 코가 아니라 턱에 걸치고 있다. 왼손에는 언제나 압박붕대를 감고 있다.
“야 인마, 왜 대답이 없어? 말이 말 같잖아?”
김종우가 채근했지만 박선규는 대답을 안 하고 걸레질만 했다. 머쓱해진 김종우는 습관처럼 중얼거렸다.
“야 인마, 인간이란 예의를 알아야 하는 거야. 나는 이 나이까지 진짜 예의 바르게 살았다고. 아! 그러고 보니 내가 벌써 스믈 아홉 살이네. 인생 참 허무하지.”
횡설수설 떠들던 김종우가 옷을 훌훌 벗고 탕으로 들어갔다. 목욕탕 청소를 하는 그는 두어 달 늦게 들어온 박선규에게 갑질 같은 고참질을 계속했다. 매일 시비를 건다. 6시에 퇴근인데 5시만 되면 가방 챙기고 퇴근 준비까지 끝낸다. 그때부터 1시간 동안 카톡을 하거나 친구에게 전화를 하면서 벽시계만 본다. 그러다가 심심하면 큰 거울 앞에서 이상한 폼을 잡거나 백댄서의 춤을 흉내 낸다.
“야 인마, 뭐 해? 이쪽에 머리카락 쓸어야지. 야 인마, 내가 처음 들어왔을 때는 진짜로 일 열심히 했어. 넌 왜 그래? 야 인마, 이거 안 쓸어?”
김종우는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발가락으로 가리켰다. 박선규는 역시 대답을 안 하고 그 머리카락을 무선 청소기로 빨았다.
“야 인마, 너 몇 살이야?”
“서른 살입니다.”
박선규가 모처럼 대답했고 김종우는 약간 움찔하는 눈빛이었다.
“서른? 나이는 나보다 한 살 많네. 그래도 야 인마, 나이란 숫자에 불과한 거야. 인생에는 경력과 경험이 중요한 거야. 목욕탕 일은 내가 선배잖아? 안 그래?”
“맞습니다.”
청소가 대충 끝났으니 박선규도 약간 여유를 찾았는지 한 마디씩 대답을 한다.
“야 인마, 너 부산 칠성파 알아?”
“모릅니다.”
박선규의 대답은 언제나 간결하다.
“야 인마. 칠성파도 몰라? 부산에서, 아니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조직인데 몰라?”
“예, 모릅니다.”
박선규의 짧은 대답에 김종우가 설명을 걸친다.
“그 칠성파의 행동대장이 누군지 알아? 모르지?”
“모릅니다.”
이번에도 박선규는 짧게 대답했다.
“그렇지. 칠성파도 모르는데 행동대장을 어찌 알겠나? 내가 가르쳐줄 테니 잘 들어. 거기에 쌍칼이라는 사람이 행동대장인데, 항상 사시미 칼 두 자루를 허리춤에 차고 다녀. 그가 칼을 뽑으면 아무도 당할 사람이 없어. 엄청난 사람이라고. 마음에 안 드는 놈은 변사체로 만들어 시궁창에 버린다고. 무섭지?”
“예.”
“야 인마, 그 쌍칼이 누구냐 하면 우리 외육촌 자형이야. 나는 자형을 존경한다고. 나의 롤모델이지. 그래서 머리 모양이나 마스크나 왼손 붕대도 내가 밴치마킹하는 거야. 알았어?”
“예, 알았습니다. 그런데 왼쪽 어깨도......?”
“당연하지. 왼쪽 어깨를 이렇게 올리는 것도 우리 자형의 멋진 몸짓이지.”
“아, 네에.”
“야 인마, 너 조심해. 내가 자형한테 전화만 하면 너 정도는…….”
여기에서 말을 멈춘 그는 주위를 휘익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 내일 당장 시궁창에 변사체로 버려지는 거야. 알았어?”
“네,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날부터 김종우는 박선규를 더 괴롭혔다. 제가 맡아서 하던 거울 닦기와 쓰레기 통 비우는 것까지 박선규에게 모두 미뤄버렸다. 이것저것 잔소리도 점점 심해졌다. 매일 담배 한 갑을 사달라고 했다. 조금 마음에 안 들면 시궁창과 변사체를 들먹였다. 토요일은 김종우가 출근도 안 하고 박선규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아, 난데… 사장이 날 찾으면 잠깐 가게에 갔다고 말해. 알았어?"
“…….”
“야 인마, 왜 대답이 없어? 우리 자형한테 전화할까?”
“…….”
“야 인마, 야 인마!...... 어, 이 새끼가 내 전화를 끊어?”
“안 끊었어. 니 맘대로 해.”
“뭐, 뭐라고? 야 인마, 너 칠성파가, 행동대장이 누군지…….”
“이제 끊을 테니 니 맘대로 해.”
“야 인마! 야 인마! 너 거기 기다려. 아니 체육공원 화장실로 와, 당장!”
이튿날 목욕탕 탈의실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안 하던 걸레질을 김종우가 열심히 하고 있다. 시간 맞춰 출근하는 박선규에게 90도 인사를 했다.
“형님, 벌써 오십니까? 천천히 오셔도 되는데요.”
“괜찮아. 오던 시간에 그대로 올 거야. 걸레 이리 내.”
“아, 아닙니다. 이건 제가 하겠습니다.”
어색하게 웃는 김종우의 눈두덩이 시퍼렇다. 감색 마스크는 없어졌고 왼손의 압박붕대도 보이지 않았다. 양 어깨 높이는 똑같고 투구 머리는 퇴근길에 자르겠다고 했다.